[ET단상]플랫폼 시대의 한국어 교육

노중일 비상교육 플랫폼 전략 코어그룹 대표
노중일 비상교육 플랫폼 전략 코어그룹 대표

하늘·땅·사람을 의미하는 한자 '천(天)' '지(地)' '인(人)'과 한글 모음 'ㆍ' 'ㅡ' 'ㅣ'는 결국 같은 뜻이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추상성이다. 복잡한 한자와 달리 한글은 점과 선만으로 우주의 구성 요소를 모두 담았다. 하늘을 점 하나로 표현한 게 압권이다. 점 하나에서 시작한 우주의 빅뱅을 닮았다.

둘째 하모니다. 글자마다 독립된 한자에 비해 어울려야 완성된 음과 의미를 만들어 내는 한글은 비빔밥처럼 모든 걸 섞고 혼합하는 우리 민족성과 닮았다.

한글의 추상성과 조합의 간결함은 0과 1의 결합인 디지털과 똑 닮았다. 디지털 강국 한국의 DNA는 이미 한글에 내재되어 있다.

디지털 시대는 플랫폼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플랫폼 시대 역시 한국 문화와 궁합이 잘 맞는다. '오징어게임'과 방탄소년단(BTS)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 날개를 달았다. 이제 전 세계 한류 팬은 공연장보다 플랫폼이란 놀이터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있다.

플랫폼 물결은 한국어 교육에도 밀어닥쳤다. 전통적 교육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진다. 6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교사 △학생 △공간 △시간 △콘텐츠 △상호작용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수업이 진행될 수 없다.

하지만 플랫폼이 한국어 교육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비상교육이 만든 한국어 교육 통합 플랫폼 '마스터케이'(Master K)를 예로 들어보자. 선생님은 한국에서 수업한다. 학생은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 흩어져 있다. 학생은 이러닝으로 예습하고, 영상수업에서 교사에게 질문한다. 플랫폼에서 시험을 치고 평가를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인공지능(AI)으로 발음 교정을 받는다. 현재 진행되는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모습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한국어 교육이 플랫폼에서 이뤄지고 있다.

[ET단상]플랫폼 시대의 한국어 교육

한국어 교육 플랫폼이 전 세계로 확산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있다. 한국어 교육도 문화 산업이고 플랫폼은 민간 영역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외 한국어 교육은 정부 주도였다. 세종학당을 비롯한 몇몇 기관이 담당했다. 한국의 국력이 약하고 우리나라를 알릴 필요가 있었을 때 이 모델은 타당했다. 정부 주도의 중국 공자학당과 유사하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때 영어의 세계화 모델을 따라야 한다. 미국 문화원이 제공하는 영어 교육은 극히 일부다. 유수의 미국 교육기업이 영어 교육 콘텐츠와 서비스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도 초급 한국어부터 전공 한국어를 배우는 단계까지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정부 조직이 수많은 니즈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플랫폼 비즈니스는 소비자 니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Agile) 조직이어야 한다. 소비자 반응이 플랫폼에서 실시간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부 사업은 예산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필요 소요를 제기하고, 예산을 책정하고 실행하며, 소비자 피드백 적용에 족히 2~3년은 걸린다. 플랫폼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예산만 낭비할 공산이 크다.

무료 또는 저렴한 한국어 교육은 자칫 잘못된 인식을 심을 수 있다. 외국인은 영어나 일본어를 배우려면 돈을 내야 하지만 한국어 학습은 공짜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정부 주도의 한국어 교육이 자칫 민간 한국어 교육산업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 정부 기관이 그동안 펼쳐 온 한국어 보급 사업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다만 한국어 플랫폼 시대에 역할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가운데 정부가 소유한 기업은 없다. 플랫폼은 빠른 변화 속도 때문에 민간 영역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한국문화, 한국어 교육에 거대한 놀이터와 학습터가 생긴 셈이다. 민간의 자율적 성장, 정부의 합리적 정책 판단만 이뤄진다면 한국어 교육만큼은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아니라 우리 플랫폼에서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노중일 비상교육 플랫폼 전략 코어그룹 대표 rhoji1@vis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