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가 정부의 전자파 시험기관에 대한 과도한 행정처분으로 신제품 출시 지연과 같은 피해가 발생한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시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약한 경미한 과실에 대해서는 '일부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는 전자·IT제조사와 민간 시험인증기관 의견을 취합해서 이번 주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 '전자·IT분야 시험기관 행정처분 합리화 건의문'을 전달한다. 전자업계는 전파법상 위반행위를 저지른 전자파 시험·평가 위탁기관에 취하는 행정처분이 최소 1개월에서 최대 6개월 '영업정지'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험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미한 실수에도 모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성적서 발급 지연에 따른 신제품 출시 차질 등 피해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시험검사 기관 4곳은 시험항목 위반 사항이 발견돼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모두 영업정지 45일 처분을 받았다. 적합성평가 시험조건 등 관련 정보를 제대로 기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문제는 시험기관이 문을 닫으면 제품 시험 인증도 중단된다는 점이다. 통상 시험기관 1곳당 1개월 동안 수행하는 인증 제품만 200점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로 제품 약 1000점이 출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파 데이터 등은 기업 기밀에 속해 특정 시험기관을 선정해 오랫동안 협업해왔다”면서 “다른 기관 위탁도 검토했지만, 그 기관도 기존 고객이 있어 우리가 후순위로 밀리는데다 신제품 출시나 전자파 정보 등 중요 정보가 경쟁사에 흘러갈 수 있어 시도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전파연 지정 시험기관은 총 52곳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자사 제품 시험을 위해 자체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면 민간 시험기관은 30곳 정도다. 시험기관 4곳만 영업정지를 받았지만 PC부터 세탁기, TV, 통신기기 등 중소 전자 제조업체는 시험성적서를 받지 못해 신제품 출시 지연은 물론 납기일 우려까지 커져 애를 태우고 있다. 업계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미한 과실에 대해서는 시정이나 부분 영업정지 등으로 행정처분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파연 전파인증과 마찬가지로 신제품 출시 전에 반드시 받아야 하는 국가기술표준원 안전인증은 행정처분이 세분화돼 있다. 소관 법률인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은 시험기관 행정처분을 과실 범위에 따라 시정 명령, 과징금, 부분 영업정지, 영업정지 등으로 나눈다. 업계는 전파법도 전안법 조항처럼 위반행위가 적발된 시험 항목만 부분 영업정지 처분을 하거나 과징금 처분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마저 어려운 경우 제조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시험을 마무리하도록 처분을 2~3개월 유예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KEA 관계자는 “지난해 적합성평가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시험기관 고객인 제조사의 피해 방지를 위해 자격정지 처분을 과징금 부과제도로 대체하도록 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평가인증 기관 소관법인 전파법을 우선하다 보니 영업정지 처분밖에 없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시험기관 영업정지에 따른 제조사 피해 상황 파악이 우선”이라면서 “업계의 피해가 있다면 합리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안법 및 전파법 시험기관 행정처분 기준 비교>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