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뒤 가상자산 전문 대형 헤지펀드 와 대출업체 파산·인출중단 사태가 잇따랐다. 이후 투자자 보호 문제가 부각됐다. 당시 많은 전문가가 예견된 사태가 터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안일하게 대응해 온 금융 당국에 많은 질타를 퍼부었다. 같은 견해다. 그동안의 안일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회피 발상의 결과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가상자산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가 기술·용어 등과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가상자산공개(ICO)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후 금융 당국이 가상자산 업계를 방치하고 터부시하는 동안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코스피 일일 평균 거래 규모를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고, 이제는 세계 3위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전 금융위원장의 이 한마디가 이를 상징하고 있다. 여전히 금융 당국은 가상자산에는 '내재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블록체인 기술은 인정하지만 가상자산 투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손해를 보는 투자자에 대한 안전장치 부족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특히 전체 투자액의 62.4%가 이른바 MZ세대, 2030세대 등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상장 시스템이다. 가상자산거래소의 현재 상장 방식으로는 테라·루나 사태를 막을 방법이 없다. 꼼꼼하게 요건을 따지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가상자산거래소는 상장 요건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 결국 중과실 사유가 있는 코인을 구별하기가 어렵고, 다른 변수로 말미암아 큰 사고가 날 경우에도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상장 요건을 공동으로 다룰 수 있게 하거나 별도의 위원회를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시세 조작 등 불공정 행위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시장 내 교란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형법상 사기죄 말고는 시장 내 교란 행위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결국 시장을 상시 관리할 수가 없고, 사기죄로 처벌하려 하면 피의자는 이미 해외로 도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시장 교란 행위와 같이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렇듯 가상자산 문제를 다루기 위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가상자산법안이 13개나 계류돼 있다. 지난해 법안소위 위원장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 논의를 진행했지만 진전되지 않고 있다. 가상자산 업권법안이 논의가 되어야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고,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될 수 있음에도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게 하고 가상자산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당과 금융 당국이 가상자산 업권법안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 업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 업계도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거래소는 가상자산 산업 발전과 함께 큰 이윤을 남긴 만큼 건전한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본 의원은 가상자산거래소 등이 자율적으로 나서서 '투자자 보호 기금'을 만들고 투자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업계에 제안했다. 기금을 만들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가운데 가상자산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도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거래소에 대한 편협한 시각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업계의 반응도 꽤 긍정적이다.
이미 가상자산 시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제도권 규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3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디지털 자산의 책임 있는 개발을 위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Ensuring Responsible Development of Digital Assets)을 발표하면서 가상자산과 관련된 소비자 및 투자자 보호 방안, 금융시장 안정 방안, 불법 금융 방지 방안 등에 대해 올해 안으로 각 정부 부처에 검토를 지시했다. 또한 EU 27개 회원국은 지난달 가상자산의 명확한 정의와 발행 조건, 거래소 규제 사항 등이 담긴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기본법 '미카'(MiCA:Markets in Crypto Assets)에 합의했다.
국가 간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한 의견 교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 재무부가 7월 1일 공개한 공동성명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지난 6월 29일 금융혁신 파트너십 회의를 개최해서 가상자산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이 가운데 특히 스테이블코인,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가상자산 규제, 시장 발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메타버스와 대체불가토큰(NFT) 같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한 가상자산이 새로운 금융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개인 없는 예치 및 대출 등이 가능한 탈중앙화 금융(DeFi:Decentralized Finance), 탈중앙화 거래소(DEX:Decentralized exchange) 등 온라인 직거래 서비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비록 비트코인을 비롯하여 주요 코인들이 경기침체와 함께 하락하고 있지만 이제 가상자산은 글로벌 시장 주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가상자산이라는 미래 먹거리를 위해 경쟁은 이미 시작된 만큼 이용자를 보호하고 시장을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해 금융 당국의 전향적 태도를 주문하는 바다. 본 의원 역시 가상자산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777byung@naver.com
<필자 소개>
김병욱 국회의원은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성남분당을'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초로 재선의원에 당선됐다. '증권맨' 출신 국회의원으로, 자본시장 및 금융 전문가로서 존재감을 알렸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에서 근무하다 2002년 개혁당 소속으로 경기 성남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요청으로 분당을 지역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19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실용주의적 성향으로 민주당 내에서 부동산 문제, 가상자산, 자본시장 등 분야에 대한 합리적 경제전문가로 분류된다. 상임위는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운영위원회, 정무위원회(간사)를 거쳐 예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자본시장 특별위원장, 정책위원회 제3정조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직능총괄본부장, 자본시장대전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