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09 로스트메모리즈'(2002)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지 않고 한반도를 강제 병합해서 100년이 지난 가상 시점에서 출발한다. 개봉 당시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에게 연합국 승리의 중요성과 대한민국 독립의 무게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아주 센세이션한 영화였다.
그럼 추축국인 일본·독일이 패망하고 연합국이 승리한 세계대전의 전세를 가르는 혁신은 무엇이었을까. 그 혁신을 작가 사피 바칼은 책 '룬샷'에서 “RADAR시스템(Radio Detection and Ranging-System)이 독일 잠수함 U보트 때문에 해상 장악이 어려운 미군에 극적으로 전세를 역전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사실상 이 RADAR시스템은 개발 초기의 '룬샷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룬샷'이란 제안자가 무시 당하고 쉽게 홀대되는 초기의 혁신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당시 RADAR시스템도 초기 룬샷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여러 차례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군 수뇌부에서조차 냉대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미국은 해상 봉쇄 위기에 내몰린 영국의 기술 지원과 자국의 절박한 개발 노력을 결합해 'Red Lab-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기술개발에 성공했고, 마침내 독일 잠수함 U보트 공격에 성공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일본의 한반도 병합이라는 영화 '2009 로스트메모리즈'가 현실화하지 않은 이유는 미군이 전세 역전의 기회를 잡았고, 역전의 기회는 미국 연구자들과 군 수뇌부가 '룬샷 아이디어'를 기술로 개발하는 혁신적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룬샷 아이디어를 혁신적이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로 정착시킬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룬샷 아이디어'처럼 미성숙한 혁신적 아이디어는 온실과 같은 분리된 공간에서 키워야 한다. 현재 우리 대학은 온실과 같은 분리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넘쳐 나는 연구자(교수자)와 학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대학은 일종의 '혁신(룬샷) 배양소'로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학의 모습은 많은 혁신이 시도되기는 하지만 새롭고 미성숙한 혁신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기업의 생태계와 다를 수 있다. 기업의 경우 당장 핵심 이슈 해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혁신을 시도하는 불편한 도전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내부적인 사일로와 외부의 협력 부족으로 지속되기 더욱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대학 환경을 '혁신(룬샷) 배양소'로 만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해 왔다. 산·학 협력을 통해 기업의 실질적인 문제해결뿐만 아니라 창의적 해결 대안을 제시하는 캡스톤디자인 지원, 초기의 미성숙한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발전하는 창업동아리와 학생창업 지원, 기업의 연구소를 대학 내에 유치해서 미성숙한 기업의 혁신 아이템을 공동으로 키워 나가는 산·학 공동 연구소 등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대학의 역할이 그동안 교육·연구·봉사에 추가해 사회경제적으로 이러한 혁신 배양소 기능이 추가되고 두드러지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코로나19 등 환경 위기 등이 중첩되는 상황에서 대학이든 기업이든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절박감은 이제 공감대 형성이 된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결과적으로 부서지기 쉽고 미성숙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꽃피우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대학의 역할 강화와 정부·기업이 함께 혁신(룬샷) 배양소를 지원하도록 하는 노력일 것이다.
박문수 단국대 산학협력융합대학 교수 amhaen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