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유통칼럼]자율규제를 위한 인내

윤석열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정부가 주도하는 법적 규제의 대안으로 '자율규제'를 선언했다. 110대 국정과제에 플랫폼 분야의 자율규제 체계 구축 및 확립을 명시했다. 복합 경제위기를 돌파하고 저성장 극복을 위해 경제 규제 혁신TF를 신설,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하고 정부 주도의 경제운용 기조를 혁신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 아래에서의 규제는 △시장규제 △정부규제 △자율규제로 구분할 수 있다. 시장규제는 문제 해결을 시장 자체에 맡기고 기업의 잘못된 행위로 보게 되는 금전적 손해나 평판 저하로 해당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 당하는 것을 우려해 기업 스스로가 바람직한 시장 질서에 순응하게 하는 것이다. 규범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어떤 법적 제재가 취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시장규제가 특별한 문제나 상황 처리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정부규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기업과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으로, 규제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 법적 강제집행이 수반된다. 강력한 집행 능력과 공익 추구라는 장점이 있지만 급속한 산업 변화나 혁신 생태계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또한 집행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 등이 부담해야 하는 집행비용, 감시비용, 이행비용 등이 과다하게 발생해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게 하거나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자율규제는 규제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지켜야 할 기준을 만들고 위반행위도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 정도로 자발적 자율규제, 완전위임 자율규제, 부분위임 자율규제 등으로 나뉜다.

자율규제는 시장 상황과 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및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좀 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기준·규칙을 만들기 때문에 규제 속도, 유연성, 민첩성, 저렴한 비용 등에서 장점이 있다. 또한 정부의 감시비용 및 적발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며 효율적 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특히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 등 혁신 속도가 빠른 역동적 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가 느리고 보수적인 법률상의 규칙보다 더 빠르고 쉽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규제 대상 당사자에게만 유리하게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기업의 신규 진입을 억제하거나 경쟁을 제한하려는 목적, 정부의 입법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또한 기준이 모호하고 취약하며, 집행도 효과적이지 않으며, 규제 위반에 대한 처벌도 상대적으로 약하고 비밀스럽게 이뤄진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율규제도 규제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산업계·소비자단체는 마치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정부는 문제에 대해 방임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공산이 커진다.

최근 이슈가 끊이지 않는 플랫폼 자율규제는 이해 당사자들 간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모델의 설계와 관련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업종이나 이슈 중심으로 아주 낮은 단계의 자율규제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업종별 산업계 차원의 공통 자율규약을 바탕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서히 진행하면서 관련 연구와 학습을 통해 자율규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모든 이해 당사자의 역량을 길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거대 플랫폼에 대한 규제 이슈가 뜨겁다. 미국 내 거대 플랫폼이 지난 10년 동안 수백 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지배력을 확장·이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혁신을 저해하고 경쟁을 제한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혁신을 위해 오히려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플랫폼 기업의 M&A 심사 기준에 비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생태계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거대 플랫폼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각국의 특수한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EU와는 다른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가 해외 사례를 흉내 내어 다른 나라와 같은 수준의 반독점 규제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규제당국도 혁신생태계에서 자율규제가 가장 효과적인 규제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연구와 학습에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율규제의 성과와 평가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속단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정부규제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과 혁신을 저해할 공산이 크다. 혁신은 동태적이며 불확실하지만 규제는 정태적이며 예측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규제는 혁신을 억제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성급한 규제가 기술혁신으로 인한 사회적 편익을 가로막게 된다. 또한 정부는 규제역량과 정보취득 능력의 한계로 복잡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독자적으로 규제를 설계하고 집행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자율규제가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장점이 많다 하더라도 산업분야별로 어떠한 자율규제 모델을 채택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 이에 따른 이해 당사자들 간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자율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혁신의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플랫폼유통칼럼]자율규제를 위한 인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