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민간 '자율규제'(self-regulation)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온라인 플랫폼 업계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정부 규제 산업인 금융·통신 분야에서도 자율규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산업군으로 '자율규제 DNA'를 심어서 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다.
자율규제란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산업 종사자나 관련 집단이 스스로 그 구성원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자율규제라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자발적 자율규제, 승인된 자율규제, 명령적 자율규제, 강제적 자율규제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 가운데에서도 자발적 자율규제는 국가의 개입이 일절 없는 자율규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존재하기란 어렵다. 나머지는 정부와 민간이 규제 권한을 일정 부분 행사한다는 점에서 공동 규제라 할 수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국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다. 물론 그전에도 대면 거래에서 비대면 거래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속됐다.
하지만 플랫폼 급성장에 따른 시장지배력 강화는 과도한 수수료 부과 등 불공정거래를 초래했다. 플랫폼의 생태계 확장을 위한 이종 사업으로의 진출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받았다.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를 정부 주도로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 산업과 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혁신생태계와 관련해 정부나 규제기관이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는 기초 데이터는 부족하다. 관련 정보가 빈약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신산업이 나오면 법령 위배부터 우선적으로 따진다. 특히 기존 산업과 갈등이 빚어질 때 신산업의 영향을 과잉 해석해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과도한 규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신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정부 규제는 합리성, 효율성, 전문성 등과 관련한 문제로 지적받는다. 미국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이 나오면 '일단 지켜보고'(wait and see) 추후 특별한 문제가 생길 때만 규제를 검토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정부규제 대신 자율규제를 택했다. 최근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위한 '규제혁신전략회의·규제혁신추진단' 신설 계획도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민간 주도로 운영하되 정부도 일정 부분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공동 규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모처럼 혁신 역량과 책임 경영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기회를 맞았다. 일부 소비자 단체들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핵심은 실천 의지에 달렸다. 자율은 타율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율규제이니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업계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부합하는 책임감 있는 기준과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 또 그동안 운영해 온 자율규제 성격의 단체·기구의 역할도 재정립해야 한다. 기존 자율규제 시스템의 한계를 제대로 분석·보완해서 더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자율규제 제재의 실효성도 중요하다. 업계가 정한 자율규제 원칙을 등한시한다면 타율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자율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제재의 타당성·실효성을 담보해야만 국민이 자율규제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자율규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제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자율규제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모범 플랫폼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자율규제가 포지티브 효과를 낼 것이고, 플랫폼 기업들의 자체적 자율규제 강화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업계는 지금의 규제환경 변화를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