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처음엔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위험한 것은 아닌지, 계속 생산되지 않는 반짝 제품은 아닌지 등을 생각하면서 구매를 망설일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 제품을 많은 사람이 쓰게 되면 따라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탈것'이란 개념이 거의 없었다. 아이디어 제품으로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질 거라는 시각도 있었고 배터리 폭발 위험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 그 누구도 전기차 시장이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가끔 전기차 화재 기사가 뉴스에 나더라도 전기차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한 번 충전해서 좀 더 멀리 가기를 원하거나 충전소 확대 등 '편리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전기차 서비스 산업은 중국이나 테슬라에 뒤졌다. 그 이유는 전기차가 기존의 자동차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서비스 관점이 많이 부족한 데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의 관련 규정을 손질하고 인센티브 체계를 바꾸는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는 전기차 정의 손질이다. 현재 국토교통부 규정에 따르면 전기차는 배터리를 포함해야만 차량으로 인정받고,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된다. 차를 타다가 배터리 수명이 다해 새로운 배터리를 교환해서 넣게 되면 자동차 자체를 새로 인증받아야만 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이는 TV 리모컨의 배터리가 수명이 다 되어 다른 건전지로 바꾸면 리모컨을 새로 인증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신산업 가운데 하나가 서비스형배터리(BaaS; Battery as a Service) 사업이다. 이는 전기차의 배터리는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로 간주해서 이용료를 내고 빌려 쓰는 개념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별도의 수명 및 특성을 지닌 자산이란 것이다. 제조 위주의 초기 단계에서 전기차의 안정성을 염려하면서도 배터리가 바뀌면 자동차 전체를 다시 인증해서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배터리를 건전지와 같은 소모품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전기차 정의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제조 단계에서의 일괄 보조금 지급에서 사용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은 자동차를 만들고 처음 인증 시험을 할 때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체계이다. 전형적인 제조 위주의 행정 편의적 형태이다. 그러나 이제 전기차는 얼마나 더 오랫동안 안전하게 탈 것인지를 평가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비근한 예로 같은 '아이오닉5'를 이용하더라도 일반인이 10년 동안 8만㎞를 타는 경우와 택시가 3년 동안 30만㎞를 운행하는 경우 어떤 것이 더 탄소중립에 기여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운행을 많이 한 자동차에 탄소중립 기여 인센티브를 더 주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처음 제조 단계에서 동일한 차종이라 해도 동일한 보조금을 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탄소중립 기여도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데이터 개방도 필요하다. 전기차를 운행하는 동안의 운행 기록, 특히 배터리 사용 기록은 서비스 시장에서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정비를 하는데도 배터리 사용의 누적 기록은 효과적 정비에 필수이고, 보험료 산정 때도 배터리 잔가를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중에 중고차로 매각할 때도 역시 배터리 사용 정보를 통한 잔가는 적정 가격 산정 때 결정적이다. 그동안 전기차 운행 데이터는 자동차 제작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서 개방되지 않았다. 최근 환경부 등에서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데이터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데이터는 블록체인 기술 등을 통해 얼마든지 비공개로 할 수 있는 만큼 전기차 사용자의 편의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는 반드시 개방돼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해결되면 많은 설비와 숙련 인력이 필요한 제조 단계보다 서비스 산업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소비자 환경에 맞는 서비스 산업도 발전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시장에 많은 것을 맡기고, 최소의 규제로 시장을 지켜보는 정책을 펼쳐 나가길 희망한다.
박재홍 한국전기차산업협회 회장 jh.park@pmgro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