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탈무드'에는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경청(listening)은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요소다. 진지한 경청은 상대방 메시지 속에 있는 이성적 의미와 감성적 반응을 이해하고 서로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화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결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얻고 유지하며 지속해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본능이 아닌 훈련이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Listening'의 저자 Wolvin&Coakley에 의하면 경청은 듣고, 주목하고, 이해하려는 세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고 한다.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환경에서도 경청은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지역·젠더·세대 갈등 등 소위 말하는 사회적 갈등을 직면했을 때 인간에게 경청은 더 이상 소통 영역이 아닌 찬반 대립 영역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는 정부와 국민 간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비효율성과 사회적 낭비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특히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현상과 같은 영역에 있어서 대화 단절, 반대를 위한 반대, 단편적이고 그릇된 정보 등으로 인해 팽팽하게 맞서 소통을 위한 행보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 님비현상 사례로 에너지 산업을 들 수 있다. 가령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선정과정만 보더라도 오랜 기간 난항을 겪었다. 1980년대부터 울진, 영덕 등을 시작으로 처분 부지 선정을 위해 9차례 연관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시도한 끝에 2005년 특별법 제정으로 돌파구를 뚫을 수 있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을 분리하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지역 지원을 명문화해 절반의 성공만 거두게 됐다. 이제는 우리 앞에 나머지 절반도 훨씬 넘는 거대한 산이 놓여 있다. 이와 연관한 사회적 갈등의 깊이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은 예측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은 친환경 에너지 분류라 할 수 있는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원자력에너지를 포함함으로써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원자력 필요성을 인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고 원전 생태계 강화를 국정과제 목표로 내세운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정부 정책 실현을 위한 원자력산업의 폭넓은 행보가 예상된 가운데 2030년쯤으로 예상됐던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는 이보다 더 앞당겨질 전망이다.
다행히도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최초의 기술 확보 청사진을 마련해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원전 정책의 기본 전제는 '안전성 확보'인 만큼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수립·실행함으로써 안전한 기술을 확보하고 이와 더불어 과학적 합리성과 기술적 타당성을 기반으로 국민 신뢰를 제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병행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에 이르기까지 절차·방식·일정, 유치지역 지원 등을 담은 제도적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현세대에서 발생시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세대 내에서 받은 혜택에 대한 책임을 다음 세대에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숙한 경청과 소통이 요구된다. 사회적 갈등 해소와 통합을 위해 각 주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과학계는 책임 있게 안정성 있는 기술 확보에 나서고 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갖춰 지속해 과학 발전을 위해 지원하며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국민도 경청을 통해 가치 있는 정보를 모으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혜안을 갖는다면 비로소 정부 정책을 수용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경청이 가지는 진정한 사회적 '가치'이지 않을까?
정원준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wjchung@su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