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는 초연결·초지능·초융합 메가 트랜드의 4차 산업혁명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쳐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대변혁 시대가 왔다. 대변혁의 파고를 어떻게 대처하며 미래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21세기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아시아 변방 국가였다. 60년 전, 국민소득 87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지금은 1962년 대비, 국민소득 400배, 국내총생산(GDP) 700배, 수출액 1만배 증가의 경이적 성장을 했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 유엔무역 개발회의 창설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한 최초 나라로 많은 개도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당연히 품어야 할 21세기 국가적 꿈은 '글로벌 초일류 선도국' 구현이다.
글로벌 선도국 도약 과기 성공 방정식
18, 19세기에는 1, 2차 산업혁명의 발원지였던 영국, 독일, 프랑스가 선도국가였다. 20세기에는 3차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미국, 일본이 주요 선도국가였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초일류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국 특유의 미래전략 성공 방정식, 일명 'K-방정식'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측면에서 K-성공 방정식에 반드시 담아야 할 세 가지 핵심 변수를 논하고자 한다.
첫 번째 K-성공 방정식:혁신
첫 번째 핵심 변수는 '혁신'이다. 부존자원이 척박해 두뇌 국가로 생존해야 할 우리나라가 최우선으로 서둘러야 할 혁신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혁신이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탈피하여 비판적 사고 능력을 함양시키고, 문·이과 융합 교육을 통한 전뇌(全腦) 교육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를 활용한 실감형 비대면 교육과 더불어 토론 위주의 대면 교육이 혼합된 이른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을 교육 현장에 도입하면 창의적 학습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융합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학에서 학과의 벽을 없애고 '무학과 학부제도'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교사와 교수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자가 아니라 수업 설계자로서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토론을 활성화하며, 멘토(mentor)로서 학생의 부족한 지식을 보완해줘야 한다.
글로벌 선도 연구개발을 지향하는 초격차의 연구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개발은 대부분 선진국 모방·추격으로 상용화 기술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원천·핵심 기술은 미국, 일본, EU 등 과학기술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다. 비근한 예로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AI 분야의 경우 2010~2019년 10년간 특허 등록 총건수가 6217건으로 미국의 26% 수준이다. 도전과 혁신적 기초와 원천 연구에 국가 연구 역량을 쏟아야 한다. 산업경쟁력은 기술력에 달려 있고 기술력은 기초과학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1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 발명은 열역학이 근간이 됐고, 2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전기 발명은 전자기학이 근간이 됐다. 3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은 막스웰 방정식이 기초가 됐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AI와 메타버스의 기반이 되는 창발적 발상의 기초과학 연구를 긴 호흡으로 지원해야 한다.
연구개발 결과를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혁신이 강화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미국특허 등록건수 2만4646건으로 세계 3위, PCT 국제특허 출원건수 2만660건으로 세계 4위로 양적인 면에서는 명실공히 세계 특허 강국이다. 문제는 많은 특허가 활용되지 않는 '휴면 특허'라는 것이다. 기술사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에게 도전정신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사업화 전담부서를 둬 특허출원, 기술이전, 창업지원, 투자 알선 등 원스톱 지원 서비스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두 번째 K-성공 방정식:협업
두 번째 핵심 변수는 '협업'이다. 무엇보다도 산·학·연의 협업이 강화돼야 한다. 기초 연구 결과가 기업에서 첨단 제품으로 생산되기까지는 응용 연구와 상용화 연구를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는 기초 연구를, 연구소에서는 응용 연구를, 기업에서는 제품 개발을 위한 상용화 연구를 한다. 따라서 이들 3주체 간의 긴밀한 협업 체계 구축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 빠르게 사업화하는데 중요하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은 산·학·연 주체 간 협력이 긴밀히 이뤄지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산·학·연의 지식 이전 정도가 세계 25위로 낮다. 또 선진국에서는 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이 대학, 연구소, 산업체에 고루 분포된 반면에 우리나라는 박사급 인력 80%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에 편중돼 있다. 결과적으로 산·학·연 연계 부족은 우리나라가 혁신 주도형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적 클러스터로 벤치마킹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다양한 구성 주체의 격의 없는 협력 네트워크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세대 먹거리 산업인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과기·의료계 협업도 활성화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50년께면 그 비율이 44%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건강 노화 사회 구현이 큰 숙제다. OECD는 2030년께 세계가 바이오경제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미 포천 경제지 선정 50대 기업 중 84%가 바이오헬스 산업과 연관돼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지금까지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선진국 주도 산업으로 진입장벽이 높아 우리나라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산업 분야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K-방역, 진단키트 수출 등을 통해 한국이 방역 모범국가로 세계 주목을 받으면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바이오헬스 산업에는 의약품, 의료기기, 재생의료, 헬스케어 분야가 있는데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임상 의사와 과학자 및 공학자의 긴밀한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나아가 임상 의사를 양성하는 기존 의과대학과 차별화해 의사이면서 연구 능력을 겸비한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국립보건원 주도로 MD-PhD 양성과정을 시행해 전체 의대생의 3%를 의사과학자로 양성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5년간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과학기술 선도국과 글로벌 협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이 세계 1, 2위를 다투지만, 10년간 총 연구개발 투자는 미국의 7분의 1, 중국의 5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이다. 또 연구 인력도 중국의 5분의 1, 미국의 4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이다. 열악한 연구 환경으로 세계적 경쟁력의 연구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선도국과 협업적 상생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미래 첨단과학기술 분야로서 거대 연구비가 요구되는 뇌과학, 양자컴퓨팅, 가속기, 핵융합, 항공우주 등 메가 프로젝트의 경우 양자 혹은 다자간 국제공동 연구개발을 능동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최근 발사된 한국 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 연구개발 사업은 미국 NASA와 협업한 좋은 사례다.
세 번째 K-성공 방정식:속도
마지막 핵심 변수는 '속도'다. 19세기 말 전화가 발명된 후 5000만 명이 사용하기까지는 75년이 걸렸고, 20세기 중반 발명된 인터넷 이용자가 5000만명에 달하기까지 25년이 걸렸는데 비해, 21세기 초 페이스북 출현 후 이용자가 5000만명에 이르기까지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초연결화 추세를 보면 30여년 후에는 세상의 모든 인류와 전자기기가 모바일 디바이스나 IoT로 연결돼 광속도로 정보를 교환하는 초스피드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국가, 기업, 조직은 생존이 힘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속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이다. 선진국처럼 '금지 사항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허락'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해 규제개혁을 신속히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 간 충돌을 효과적이고 빠르게 해결하는 범부처적 컨트롤타워 조직을 통해 거버넌스 효율화를 이뤄야 한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내의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정책처(OSTP)'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 정부에서는 아쉽게도 이런 컨트롤타워 행정조직이 없는데, 차선책으로 헌법기구인 대통령 위원장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그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창업 가속화를 통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도 속도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일이다. 대표 창업 국가 이스라엘은 2020년 기준 6600여개 스타트업이 있고, 이 중 30개가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창업 기업이 98개로 유럽연합 국가 전체보다 많다. 이스라엘 창업 가속화의 비결은 과학자는 연구에만 전념하고, 개발된 기술을 와이즈만연구소 '예다' 같은 글로벌 수준의 TLO를 통해 창업으로 발 빠르게 지원하는 체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으로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선도국 도약의 기회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가 선도국에 비해 50~100년 늦게 시작했다. 그럼에도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짧은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AI와 메타버스를 중심으로 지금 인류 사회에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그동안 추격자 전략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공통으로 맞닥뜨린 도전이기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특유의 혁신, 협업, 속도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나라는 21세기 글로벌 초일류 선도국으로 도약하며 한민족 자존의 위대한 세기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신성철 前 KAIST 총장·국제미래학회 자문위원
<필자>신성철 총장은 현재 KAIST 초빙석학교수로 있으며 DGIST 초대·2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세계경제포럼 4차산업혁명센터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대학 혁신 및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활발히 기여해 왔다. 자성학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 및 한림원 정회원이며 한국자기학회 및 한국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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