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건 정말 외로운 일이다.”
올해 2월 작고한 이어령 교수가 '마지막 수업'에 남긴 말이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 Think different, 이 대목에서 갑자기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는 건 비약적 논리 전개일까.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청바지와 검은색 목폴라를 입은 잡스의 '아이팟, 폰,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을 반복하면서 세상에 처음 아이폰을 선보이던 장면은 충격이었다. 그렇다. 그가 남들과 똑같이 생각했다면 노키아나 블랙베리보다 성능이 좋은 핸드폰을 개발했더라도 지금과 같이 세상을 바꾸는 스마트폰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1년 전인 2006년에 출간된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의 융합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지금에서 생각하면 가상과 현실의 융합 세계, 4차 산업혁명 핵심 주제인 CPS(Cyber Physical System), 디지털 트윈, 유니버스와 메타버스 개념까지 확장할 수 있는 디지로그, 단순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에 머무르지 않는 개념의 시작이었다.
지금 우리 산업은 디지털 대전환기이고, 산업통상은 글로벌 밸류체인이 끊어졌다. 자원은 에너지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산업·식량자원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급변하는 정세 속에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세계 제조업 경쟁력지수(CIP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152개국 가운데 3위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 위기와 세계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제조업이 우리 경제에서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위기를 넘어 국내외 제조 환경의 구조적 변화, 팬데믹 이후 디지털전환과 친환경화 등 새로운 글로벌 경쟁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수출 품목 1위는 반도체로, 전체 수출액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다음인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11%라고 하니 가위 주력 산업의 중요도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에 비하면 로봇산업은 미약하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제조는 절대적으로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로봇은 자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력 산업을 이끌어 가는 핵심 전략 산업인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중대재해처벌법 등 최근 제조 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우리 기업은 인건비 절감 및 생산성 향상과 이와 동시에 안전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현실에서 로봇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소비 트렌드의 등장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제품의 수명 주기가 단축됨에 따라 제조업 생산방식이 소품종 대량생산에 유리한 라인(Line) 방식에서 다품종 변량생산에 적합한 셀(Cell)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자동화를 넘어 지능화와 서비스화로 전환되는 양상이다. 대기업은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디지털전환과 함께 AI를 접목한 첨단 로봇으로 제조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트윈의 가상공장, 메타 팩토리를 구축하는 등 제조혁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 기반을 담당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의 상황은 그러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현장 수준별 제조 로봇의 도입이 절실하다. 제조 현장 로봇 도입 효과는 2016년부터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시행한 '로봇활용 제조혁신 지원사업' 성과에서 알 수 있다. 2021년까지 178개 기업에 970대 로봇 도입을 지원해 생산성 64% 향상, 불량률 개선 70%, 산업재해 24%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은 로봇 도입을 통한 제조공정의 디지털전환이다. 중소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을 목적으로 로봇자동화 공정설계, 로봇시스템 설치 및 시운전, 안전검사까지 일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정부는 제3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에 따라 제조현장 로봇활용 표준공정모델 개발에 주력하고, 민간 중심의 보급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뿌리·섬유·식음료 등 로봇 활용이 미흡한 산업과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항공·조선·바이오화학을 중심으로 표준공정모델을 개발하고 보급했다. 2021년까지 83개 표준공정모델을 개발했으며, 1234대 제조로봇을 실증한 바 있다.
이런 노력에도 산업 대전환기에 전체 제조업을 추동하는 거시적 관점의 로봇 활용은 아주 미흡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디지털전환 경쟁 가속화에 대응해 제조현장 지능화, 사회문제 해결까지 로봇을 활용한 제조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고강도, 고위험, 단순 반복 업무 등 로봇 활용이 시급한 공정을 중심으로 로봇활용 표준공정모델의 개발·실증·보급·교육 등 단계별 패키지 지원이 필요하다. 또 향후 전 업종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둘째 중소·중견기업의 로봇 도입 핵심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초기 로봇 도입비용 절감을 위해 중고 로봇 시장의 확대·활성화도 이뤄져야 한다.
셋째 로봇을 통한 자동화의 필요성·파급성·경제성 등 기존 로봇 활용 단계를 넘어 업종별 공정 특성을 고려한 기계·로봇·장비를 연계한 스마트 공장으로 제조업의 디지털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로봇 활용을 통한 제조 혁신, 디지털 혁신을 통한 산업 대전환, 지속 가능한 제조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shon@kiria.org
<필자>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1990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로봇기술본부장.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소장, 미래산업전략본부장, 융합생산기술연구소장·부원장 등 주요 보직과 한양대 겸임교수 및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를 역임한 지능형로봇과 모빌리티, 융합기술과 산업정책 전문가다. 지난해 4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산업 대전환을 위한 로봇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