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N차 창업' 시대, 끊임없이 도전하는 재창업 생태계를 조성하자

김용문 창업진흥원장
김용문 창업진흥원장

'Pay it Forward.' 선행 수혜자가 원래 후원자를 대신해서 타인에게 보답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People Pay More When They Pay-It-Forward'라는 심리학 논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PIF(Pay-It-Forward)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곳이 있다. 스타트업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창업 환경을 갖춘 미국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모험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말미암아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다. '창업→투자→성장→엑시트→재창업'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회수 자금으로 창업에 재투자하는 연쇄 창업이 활성화됐다. 타인의 도움으로 성공한 창업가가 또 다른 창업가를 도와 성공으로 이끄는 문화, 이것이 바로 창업생태계의 PIF 모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창업생태계에도 이런 모델이 작동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서는 재창업, 연쇄 창업 인식이 부족하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최근 들어 성공한 선배 스타트업이 PIF 문화를 한국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니콘 반열에 오른 선배 스타트업이 후배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직접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고, 각종 경진대회나 멘토링을 진행하고 나섰다. 이러한 모험자본의 선순환으로 우리 창업생태계도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는 끊임없는 창업, 즉 연쇄 창업이 활성화되는 'N차 창업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연쇄 창업'(serial entrepreneur)은 아직 국내에서 생소한 단어다. 연쇄 창업은 일정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의 창업을 경험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창업 성공이나 실패와 관계없이 기존 창업을 정리하고 재창업하거나 성공적인 엑시트(exit) 이후 얻은 수익으로 다른 창업에 투자하는 등 계속적인 창업 도전을 말한다. 다만 동시에 여러 기업을 운영하는 포트폴리오 창업은 배제된 개념이다.

연쇄 창업은 최근 기술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하나의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손대는 사업마다 이른바 '잭팟'을 터뜨리거나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서 재창업한 사례, 칠전팔기 정신으로 수많은 실패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마침내 성공을 이룬 경우도 있다.

재창업과 연쇄 창업은 코로나19라는 위협이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글로벌 투자시장 위축이 현실화되는 지금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GEM·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4.7%다. 연구에 참여한 47개국 가운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두 번째로 낮다. 하지만 기업생멸행정통계(통계청·2019)에서 신생기업의 5년 생존율은 32.1%에 그친다. 28.6%이던 2016년 이후 지속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저조하다.

국내 창업기업 생존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재창업 활성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금 같은 위기가 지속되면 앞으로 실패를 경험할 스타트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 실패나 성공 경험이 미래 성공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창업도 예외가 아니다. 창업 경험은 사회적 자본과 자원의 접근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에 대한 신중한 대처가 가능, 미래 성공에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지금 이 시점에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N차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순환 재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많은 스타트업이 PIF 문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민간의 힘만으로 연쇄 창업이 이뤄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는 역부족이다.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 나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스타트업이 끌고 정부와 공공이 뒤에서 미는 창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민·관 협력 모델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이에 최근 민·관 협업을 통해 스타트업 재기를 지원하는 'Re-Born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신한은행과 협력해서 조성한 재창업기업을 위한 공간 '리본 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재창업기업과 대기업 협력체계 강화를 위한 '재창업기업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 우수한 바이오·푸드테크 분야 재도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상'과의 업무협약 등 다양한 재기 지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재창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러한 민·관 협력에 동참해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는 건강한 재창업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김용문 창업진흥원장 ymokim@kise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