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와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 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에서도 100억달러(약 13조원)가 투입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우주 개발은 물론 크나큰 기술·산업적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과학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점은 우주 개발을 통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한계치가 넓어진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우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까?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은 렌즈를 정교하게 연마하는 기술을 개발해 먼 거리를 보는 망원경을 만들어냈다. 망원경은 갈릴레오와 뉴턴 같은 천재 과학자들의 손을 거치며 개량됐고, 20세기 들어서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다른 파장의 빛도 관측할 수 있는 전파망원경이 등장했다. 이제 인류는 소재, 광학, 항공, IT 기술의 총집결체인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통해 135억년 전 우주에서 일어났던 일을 처음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는 무한히 넓지만, 또 무한히 정교하기도 하다. 아주 작은 세계인 미시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역시 렌즈를 사용한 현미경이 필요하다. 망원경이 연구되던 시기인 17세기에 역시 네덜란드인들의 손에 의해 미생물이나 세포를 관측할 수 있는 현미경이 만들어졌다. 20세기 들어 전자투과현미경, 주사현미경, 원자현미경 등 다양한 방식의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개별 원자와 그 원자들 간 관계를 직접 눈으로 보며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에 대한 인간 사고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망원경과 현미경이라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처럼, 컴퓨터 역시 인간의 사고 한계를 확장하는 데 또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 과거의 과학 연구들은 실험과 이론이란 두 개의 큰 축에서 이뤄져 왔다. 현재의 과학 연구는 모의실험과 데이터분석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더해지면서 모두 네 개의 방법론이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컴퓨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연구, 너무 위험한 연구, 또는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모의실험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해준다. 실험으로 관측된 현상을 컴퓨터를 통한 정교한 모의실험으로 되짚어보면 그 원인과 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모의실험은 신약 개발이나 항공기 개발 같은 산업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나 비용을 줄이는 데 실제 실험보다 모의실험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망원경과 현미경 성능이 향상되며 인류가 볼 수 있는 세계가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면 볼 수 있는 세계는 더욱 넓어진다. 슈퍼컴퓨터에서는 은하, 별 같은 거시세계에서부터 분자, 원자, 쿼크처럼 극도의 미시세계까지 연구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여러 영역에서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커지면서 이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투자의 규모에 있다. 대기업들은 슈퍼컴퓨터를 위한 인프라 투자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연구기관이나 대학,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의 입장에서 이런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600페타플롭스(1초에 60경번 연산 수행)의 국가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에 293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연구자가 이 소식을 반기고 있다. 2023년 말에 구축될 국가슈퍼컴퓨터 6호기가 여러 과학 난제 해결, AI 기반 신산업 성장, 정부의 양자컴퓨터 개발 등에 기여하며 국내 과학기술 역량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고 믿는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 siklee@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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