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도로 위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길

[ET시론] 도로 위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길

지난 6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시효 6개월을 앞두고 7~14일 총파업을 이어 갔다. 파업 여파로 시멘트 공장 저장고에는 운송되지 못한 재고가 잔뜩 쌓였다. 시멘트 출하가 막히자 피해는 레미콘과 건설업으로 번졌다. 건설 현장은 멈춰 선 레미콘 차량 앞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일단은 해당 자재 없이 할 수 있는 공사를 먼저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식당이나 주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피해가 났다. 주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배송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 대처' 방식으로 시종일관 대응했다. 심지어 파업 나흘째인 오전 출근길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면 노사 간에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 인식이 얼마나 되며,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14일 파업 현장을 방문, 화물연대를 압박했다. “국민 경제를 볼모로 삼는다면 중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돌아갔다. 다만 정부와 화물연대는 장장 8일 만에 극적으로 막판 합의를 이뤄 냈다. 이후 협상과 결렬을 네 차례 반복하던 총파업은 화물안전운임제 일몰을 '폐지'하자는 화물연대와 '연장'하자는 국토부 간 갈등의 불씨를 남긴 채 일단락됐다.

화물노동자들이 총파업까지 불사하면서 지켜 내려 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20여년 전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국내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제도는 1999년 화물운송사업 등록 기준 대수를 '1대 이상'으로 정했다. 화물차 1대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장벽을 완화한 것이다. 이후 시장은 운송사업자의 폭증으로 경쟁이 심화했다. 급기야 운송사업자는 2003년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한 집단 운송 거부로 물류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운송사업 시장진입제도를 허가제로 전환, 신규 진입을 규제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화물운송사업자에 비해 물동량은 제한된 화물운송시장에서 화주가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 그 결과 화주는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시장 요소의 핵심인 운임을 결정해 왔다. 화물기사들이 합리적인 운임 원가가 반영된 적정한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한 이유였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100대 국정과제에 '국가 기간 교통망 공공성 강화 및 국토교통산업 경쟁력 강화'에 표준운임제(현 안전운임제)가 포함됐다. '안전운임제'는 말 그대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수준의 보수를 주는 제도다. 한마디로 화물 기사의 최저임금이다. 이듬해 국회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면서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제도 시행 기간은 2020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단 3년이었으며, 컨테이너와 시멘트 2개 품목에 대해서만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화물차 41만대 가운데 2만6000대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화물기사의 든든한 안전장치가 됐음은 물론 다음에는 다른 품목으로도 확대되리라는 희망을 줬다.

안전운임제 시행은 효과가 있었을까.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 5월 30일 토론회에서 발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차주의 월 수입이 각각 73만원, 223만원 증가했다. 월 근로시간은 각각 5.3%, 11.3%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컨테이너와 시멘트 차종을 포함한 사업용 특수 견인차의 교통사고 건수도 2019년에서 2020년까지 2.3% 줄었고, 부상자도 1079명에서 991명으로 감소했다. 화물기사 처우가 어느 정도 개선된 것이다.

필자는 2년 연속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전운임제 3년 일몰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컨테이너 화물조합원 4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안전운임 위반을 경험한 사람은 52%에 달했다. 주요 위반 유형별(중복 포함)로 보면 불법수수료 징수 45%, 비용인상 29%, 안전운임 미지급 33%, 부대조항 미준수 36%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운임제 시행 초기에 눈치를 보던 화주, 운수사업자들 사이에서 3년만 버티자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불법·편법이 난무해진 것이다.

이에 지난 1월 일몰제 폐지를 담은 화물운수사업법 개정안을 가장 먼저 발의했지만 국토위에서 교통 관련 법안을 상정할 힘이 있는 국민의힘의 교통법안소위 위원장이 '쟁점' 법안이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책임 회피도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막지 못한 원인이 됐다.

화물노동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다. 도로 위를 달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절규다. 올해 말로 종료되는 안전운임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수출입 컨테이너, 시멘트로 제한된 품목을 늘리는 것. 이는 모두 법 개정 사안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국민의힘은 일시적 봉합에만 급급한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우선실천단'을 구성해서 지속적으로 화물연대, 화주, 운송업계 등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통해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을 현행 2개에서 7개로 확대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번 정기국회 민생법안으로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법안이 선정됐다. 이번 정기국회가 사실상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는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은 물론 도로 위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임을 기억하자.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hana-king@hanmail.net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오섭 의원실 제공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오섭 의원실 제공

<필자>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총선 광주북구갑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원내 대변인과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하는 등 차세대 민주당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득했고, 그 가치 시현을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2010년 제6대 광주시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재선됐다.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소통기획관·대변인을 지냈으며, 국가균형발전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선 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원내대변인과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