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장기 계약을 맺고 경쟁사 부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피하는 대신 자진 시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26일과 31일 두 차례 전원회의를 열고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신청을 심의한 결과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동의의결은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 구제 등 타당한 시정방안을 제안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RF프론트엔드, 와이파이, 블루투스, 범지구 위성항법시스템(GNSS) 부품 등 스마트기기 부품 공급에 관한 3년짜리 장기 계약을 강제한 혐의를 조사해 왔다. 지난해 1월부터 2023년 말까지 브로드컴의 부품을 매년 7억6000만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금액이 미달하면 차액을 배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약은 만기 전인 지난해 8월 종료됐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구매 주문 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을 이용해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고 지난 1월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상정했다. 공정위는 9명의 위원이 참여하는 전원회의를 열어 법 위반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었다. 브로드컴은 이에 지난 7월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브로드컴은 선적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으로 불이익한 내용의 부품 공급계약 체결을 스마트기기 제조사에 강제하거나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 등을 중단하겠다는 자진 시정방안을 제시했다. 일정 금액의 상생기금을 마련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 중소 사업자를 지원하고, 반도체 설계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공정위는 “스마트기기 부품은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고 동태적 경쟁이 이뤄지는 분야여서 동의의결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경우 실익이 크다”며 “이번 사건은 스마트기기 핵심 부품과 완제품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거래 당사자 간에 발생해 동의의결을 통해 효과적으로 거래 질서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한 동의의결을 통해 브로드컴이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시정방안을 이행하도록 해 스마트기기 부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상생 지원 방안 등 중소 반도체 업체의 기술 개발과 신규 진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브로드컴의 구체적인 시정방안은 공정위의 심의를 통해 확정된다. 공정위는 심의에 앞서 브로드컴의 시정방안을 보완해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하고 삼성전자 등 이해관계인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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