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기후 위기 등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가 대두되며 전기차(EV) 보급이 확산하고 있다. EV에 탑재되는 이차전지 산업 역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이차전지 산업 발전 방향을 이해하려면 시장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경쟁 구도와 협업이라는 인자를 통해 시장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은 지리적 위치와 특성을 고려했을 때 크게 중국·유럽·미국 시장으로 분류된다. 중국은 정치 구조와 오랜 치킨 게임을 거쳐 CATL, 비야디(BYD), EVE 등 주요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제조설비는 이미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중국 이차전지 설비 공급망은 두 가지 특성으로 나뉜다. 선도지능과 영합과기라는 대형 설비 제조사의 상반된 전략이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 선도지능은 전극, 조립, 화성 등 주요 공정 설비의 종합 공급사를 자처했다. 부품 자체 제조와 내재화를 꾀함과 동시에 배터리 제조사와 장기 협력을 맺었다.
영합과기는 지분 투자를 통한 수직 계열화를 추구했다. 해외 업체와 조인트벤처(JV), 전력 발전 회사를 통한 자본 수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이차전지 설비 제조사로서는 파트너로 참여해 해외 시장에서 동반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유럽의 선택이라는 변수가 관건이다.
유럽 시장은 소재·부품·설비 내재화와 친환경 생산시스템을 지향한다. 유럽 이차전지 업체는 배터리 제조 경험이 전무하다. 국내 배터리 3사 레퍼런스를 많이 가진 설비 제조사를 선택, 운영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스웨덴 노스볼트, 노르웨이 프레이어, 영국 브리티시볼트, 프랑스 베르코어 등은 기가팩토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신규 제조사다. 이들은 설비 공급망 안정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하나기술과 프레이어의 전략적인 장기 파트너십이 대표적이다.
설비 제조사의 기술 외에 운영 협조도 공급망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독일·이탈리아 설비 자동화 업체는 한국 설비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사와 접근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위협이 되는 중국 설비 제조사에 대한 경쟁 우위 전략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미국 시장은 국내 배터리 3사와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합작 또는 자체 공장 설립이 특징이다.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절반을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초기 개발 자금 수혈을 통해 배터리 스타트업 역시 다수 등장하고 있다.
한국 설비 제조사가 현재 글로벌 이차전지 설비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설비 제조사의 국내 배터리 업체 진입은 새로운 경쟁 구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주요 시장의 특성을 통해 이차전지 설비 시장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배터리 제조사와는 운영 노하우 공유와 경쟁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배터리 제조설비의 안정적인 양산 경험은 차기 설비 선택에 중요한 요소다. 다음으로는 차세대 전지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전고체 같이 주목받는 전지는 양산성을 해결하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해외 설비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현지화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 설비업체의 운영 노하우와 국내 배터리 3사 레퍼런스의 경우 당장은 장점이긴 하다. 유럽·북미 지역 신규 배터리사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설비업체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를 고려해 해외설비업체와의 협업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원가절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력과 원자재를 통한 원가절감에는 한계가 있다. 장비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운영 시스템을 통해 설비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사용자인 배터리 제조사 역시 지나친 가격 경쟁 유도 대신 검증된 생산시스템을 채택함으로써 상생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이윤석 하나기술 이사 yslee@hn-te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