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바이오 제품 연구·생산을 강화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미국 진출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국제 역학을 고려한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14일(현지시간) 각 부처 고위 관료가 참석한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회의를 개최하고 5년 동안의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 자금을 관련 정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발표한 '바이오 이니셔티브' 후속 대책의 일환이다.
구체적으로 국방부 주도의 국내 바이오 제조 생산 기반 구축에 5년 동안 10억달러를 지원하고,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관련 시설 보안을 향상하기 위해 2억달러를 투자한다. 보건복지부는 전염병 대응에 필요한 약물에 들어가는 원료와 항생제 생산에 4000만달러를 투입한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바이오산업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반도체·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견제' '공급망 안정' 두 가지를 노린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해외에서 지정학적 비교우위를 유지·강화하려면 국내에서 국력 원천을 채우고 재활성화해야 한다”면서 “생명공학은 그 노력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공식 자료에서 “이러한 노력이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미국 내 (관련 제품) 소비자가를 전체적으로 낮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바이오산업 패권 확보를 천명한 만큼 우리도 좀 더 세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 진출을 타진해 온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도 미국이 주도하는 흐름에 국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 외교·정책적으로 빨리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앞으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 예로 일본 정밀화학 기업인 후지필름은 최근 미국 내 바이오산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후지필름은 미국과 유럽 공장을 업그레이드, 오는 2026년까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65만8000리터(ℓ)로 4배 늘릴 계획이다. 이는 현재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필적하는 규모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바이오 생산시설을 확대하기로 한 이상, 제3국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바이오 산업에서 한국보다 뒤처진 일본이 이를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