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경 이엔플러스 신소재사업본부 부사장
요즘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는 말 그대로 비상이다. 미국이 중국을 배터리 공급망에서 배제하려고 나선 탓이다.
최근 미국 상원과 하원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핵심은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보조금 확대다. 단,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조건을 달았다. 배터리 관련 소재·부품이 중국에서 채굴, 가공된 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산 소재를 제외해야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는데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의 중국에 대한 소재 의존도는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다.
통계만 봐도 중국 의존도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 핵심 수입품목 4개 중 3개는 중국산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 228개 중 중국산 품목이 172개로 75.5%의 비중, 일본산 품목은 32개로 14.0%의 비중, 미국산 품목은 24개로 10.5%의 비중으로 나타났다. 관리가 필요한 중국산 핵심 수입품목의 경우 전기제품, 기계 및 컴퓨터, 철강, 유·무기화합물, 유리, 의료용품, 비철금속 등 산업용 원자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이차전지의 필수 소재인 비철금속의 수입은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2차전지의 원료가 되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이 포함된 비철금속 수입은 2020년 상반기 65억2000만 달러에서 올해 127억3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차전지 구성요소만 봐도 4대 요소 곳곳에 중국의 그림자가 있다. 이차전지의 4대 요소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으로 구성되는데, 음극재는 83%, 양극재·전해액·분리막은 각각 60% 이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먼저 양극재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하나로 합친 화합물인 전구체에 리튬을 더해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전세계 양극재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양극재를 팔기 위해 그만큼 전구체를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구체 수입의존도는 국내 수요의 약 79%에 달할 정도며 대부분 중국에 의존한다.
리튬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내 업계에서 리튬 확보는 전쟁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대중 무역 적자가 큰 5대 품목 중 하나가 리튬인데, 올해 상반기 리튬 수입 금액은 11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404% 늘어난 수치다.
음극재는 흑연이나 실리콘 등이 주요 원료인데, 중국이 인조 흑연 시장을 장악하면서 지난해 전 세계 음극재 생산량 중 95%가 중국에서 생산됐을 정도다. 국내에선 포스코케미칼이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체제를 구축했지만, 아직까진 중국 의존도가 심한 형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로 완성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가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지만, 사실 업계는 진작부터 배터리 소재와 부품 공급난을 우려해 왔다.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중국이 요소수 원료인 요소 수출을 금지하면서 두 달 가까이 요소수 대란을 겪은 바 있다. 요소수 품귀 사태는 물류 대란으로 이어졌고, 국내 산업계 전반을 뒤흔드는 혼란을 초래했다.
지금은 요소수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제2의 요소수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이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 수출을 막아 버린다면 우리나라 배터리 시장은 ‘올 스톱’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원자재 공급대란의 위기에 몰려있는 대한민국. 결국 자생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규제 완화’라는 문턱부터 넘어서야 한다.
앞서 벌어진 요소수 사태는 기술력의 문제가 아닌 과도한 환경 규제에서 빚어졌다. 일본 수출규제 리스트에 오르며 위기감이 고조됐던 불화수소 역시 불산 누출 사고 등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산화하지 못했다. 배터리 산업의 핵심 소재들도 마찬가지다. 리튬만 해도 생산을 위해선 불순물이 섞인 원석에서 정련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환경 규제로 인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K-배터리 전략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배터리 소재·부품 시장을 과도하게 옥죄고 있는 규제를 어느 정도는 풀어줘야 한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K-배터리의 미래는 없다.
필자소개 : 강태경 부사장은 그래핀 등 소재R&D 분야의 전문가로, 도전재 솔루션과 방열 소재를 만드는 이엔플러스 신소재사업본부 부사장으로 재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