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진지했다.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 열정이 넘쳤다.
1시간여 인터뷰 중 그의 이야기는 산만하지 않고 연계되면서 일관된 목표와 맞닿아 있었다. 지역 정보화 혁신과 이를 통한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 향상이다.
33년 공직에 몸담았던 이재영 원장은 지난해 11월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 이하 개발원)에 합류했다. 향후 추진될 지역 정보화는 '지역디지털 2.0'으로, 분산된 시스템과 데이터를 통합하고 융합·분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와 궤를 같이 한다는 판단이다.
이 원장은 이를 위해 지역데이터 분석종합센터를 구축하는 한편, 개발원이 지역 디지털 혁신의 싱크탱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 지역 혁신 사례를 전파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국제연합(UN) 공공행정상에 개발원 자체의 출품을 추진하고 '제1회 디지털 지역혁신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재영 원장을 만나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사업 추진 현황과 우리나라 지역 디지털 혁신 방향을 들어봤다.
대담=김원배 ICT융합부 부장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대해 소개해 달라.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국이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역사이듯이 1997년 설립된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은 우리나라 지역 정보화와 역사를 같이 했다.
정부는 개발도상국에서 다음 단계로 점프를 위해서는 디지털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중앙정부는 세팅을 끝냈지만 지방은 정보화가 더디고 지역마다 사정도 달랐다.
반면에 주민등록 등·초본 등 전국 어디나 행정체계나 서비스는 다 비슷하다. 그래서 공동으로 진행해야 할 정보화는 전담기관을 통해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목적으로 설립한 게 바로 개발원이다.
개발원은 지방행정 처리를 지원하거나 대국민서비스를 담당하는 50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한다. 도로명주소시스템, 위택스시스템, 고지서 모바일 전자송달서비스, 문서24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맘편한 임신' '행복출산' 등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원스톱 서비스도 개발원이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역디지털 2.0의 의미는 무엇인가.
▲개발원은 설립 이후 25년간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화해 50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부는 대국민 서비스에, 일부는 행정기관 업무에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개발원이 하고자 하는 일은 차세대로 진화하는 것이다. 분산된 데이터와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통합하고 연결하고 융합·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다. 현 정부 디지털플랫폼정부와 방향이 같다. 이를 기존(지역디지털 1.0)과 구분해 지역디지털 2.0이라고 한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부처별 디지털화를 추진하다 보니 지역도 산업별, 분야별로 연계가 되지 않고 수직계열화가 돼 있다. 25년간 쌓인 담장을 허물고 융합을 하자는 게 지역디지털 2.0의 핵심이다.
그 일환으로 개발원은 내가 합류하기 이전부터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 차세대 지방재정정보시스템, 차세대 표준인사정보시스템, 차세대 주소정보시스템,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등 5개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에 기반을 둔 행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차세대 사업을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은 자치단체별로 분산·운영된 정보인프라를 하나로 묶어 클라우드화하고 빅데이터 분석기능을 탑재하는 게 골자다.
'차세대 표준인사정보시스템'은 7월 구축을 완료하고 오픈했다. 임용, 교육, 평정, 급여, 복무 등 인사행정 전 분야를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됐다.
'차세대 지방세입정보시스템'은 내년 1월 개통이 목표다. 구축이 완료되면 지자체 공무원의 단순반복·수기업무 감소와 데이터 기반 세입정보 분석이 가능해진다. 납세자는 스마트 기기로 지방세 안내를 받고 간편 결제 등 원하는 방식으로 납부할 수 있게 된다.
'차세대 지방재정관리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8월 1일 예산편성 기능이 내재된 1단계 시스템 구축을 완료해 모든 지자체가 2023년 예산편성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2024년 1월 전면 개통되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지원과 함께 주민 맞춤형 정보서비스 구현이 가능해진다.
지방행정공통시스템과 주소정보시스템은 예비타당성 검토 등 본격적인 차세대 사업을 위한 사전절차를 밟고 있다.
-지역디지털 2.0에 대비한 조직 차원의 준비는 무엇인가.
▲지난해 11월에 부임해 10개월 동안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수립했다. 지역디지털 2.0이라는 새로운 비전에 맞춰 조직과 인력 개편을 진행 중이며 조만간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관련 예산 확보, 행정안전부 협의 등이 남아 있다.
조직개편은 내부 직원에게 안을 공개하고 9월까지 의견을 수렴했다. 기존 디지털정책기획부를 디지털전략기획부와 지역디지털지원부로 분리한다. 디지털전략기획부는 '퍼트스 무브'를 위한 다양한 지역 디지털 혁신 전략을 구상한다. 지역디지털지원부는 디지털 정책이 필요한 지역에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이 외에 데이터본부도 신설할 예정이다.
-조직개편 방향에 향후 개발원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긴 것인가.
▲그렇다. 25년간 정부가 결정한 것에 따라 시스템만 구축하다보니 수동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개발원이 25년간 업무를 추진하며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 지식이 충분한 만큼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 지역 디지털을 선도하는 '싱크탱크'가 되자고 임직원을 설득 중이다.
지방도 각각의 플랫폼과 디지털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별 제도, 조례, 규칙 등에 맞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컨설팅하고 역량 강화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서울, 경기, 제주 등 지역별 특색에 따른 맞춤형 컨설팅이 필요하다. 기존에도 해오던 일인데 이를 더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디지털지원부를 만드는 이유다.
시스템 구축 차원에 마무르는 게 아니라 관련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개발원의 정책 수립, 평가 노하우를 공유할 예정이다. 지역에서도 정보화에 관심이 있는 지자체장이 꽤 많기 때문에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으로 본다.
-향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역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활용할 수 있는 '지역데이터 종합분석센터'를 구축하고 싶다. 개발원은 50개 시스템과 보안 시스템 등을 운영하며 3만여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소위 '데이터 레이크'가 마련됐는데 아직은 사일로 형태로 분리돼 있어 이를 연결하고 융합하는 분석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역데이터 종합분석센터에는 개발원 3만여종 데이터 이외에 각 지자체, 지방 기관 등이 보유한 데이터까지 추가해 공무원, 연구기관은 물론 일반인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정 지자체를 테스트베드로 지정해 데이터를 활용해보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물론 예산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러나 지역데이터 종합분석센터는 지역디지털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시각에서 지역발전 정책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개발원의 역할을 확대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외국에서 오래 근무했던 분들께 들으니 외국에는 개발원처럼 지역 정보화, 지역 디지털화만을 전담하는 성격의 기관이 전무하다고 하더라. 개발도상국에 개발원 같은 모델을 이식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위상 제고는 물론 우리 기술, 기업이 해외에 뻗어나가는 데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자정부를 수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발원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국제연합(UN) 공공행정상을 받는 것이다. UN 공공행정상은 선진 공공행정을 발굴해 시상하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개별 시스템이 대상이었지 개발원 같은 기관을 우수사례로 출품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들었다. 아직 검토 단계로 행안부와 이를 논의하고 싶다.
개발원이 해외에 알려지면 현지에 전담기관을 만들어 정보화를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 하나는 5일 열리는 '제1회 디지털 지역혁신 글로벌 포럼'이다. 해외 여러 관계자에게 개발원과 우리나라 지역 정보화 사례를 알리고 소개하는 자리다. 학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꾸준히 홍보를 하고 각국 관계기관과 교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개발원을 어떤 조직으로 만들고 싶은가.
▲아침에 빨리 출근하고 싶은 '행복한 직장'을 만들고 싶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스트레스 중 하나가 바로 '일요병'이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인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개발원만큼은 임직원이 빨리 출근하고 싶은 행복한 직장으로 만들고 싶다.
또 하나는 조직과 구성원 역량을 높이기 위해 격식없는 소통을 하는 것이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을 '파스타 데이'로 정하고 직원의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소통하고 있다. 만약 당일 아무도 식사 신청을 하지 않으면 혼자 식사하는 것으로 정했는데 다행이 아직까지 혼밥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기관장 훈시 위주 월례조회를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바꾸어 직원과 원장이 같은 눈높이에서 조직 현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직원이 바라는 점, 기관장이 바라는 사항 등에 대해 상호 소통을 하고 있다.
행복한 직장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노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근접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이재영 원장은
한양대 법학과 재학 중인 1988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전남도청, 행정자치부 공직윤리팀장, 국무총리실 행정자치팀장, 행정관리과장으로 근무했다.
2009년 행안부 제도총괄과장으로 복귀한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기획조정관, 지역발전위원회 연계협력국장, 행정자치부 정책기획관, 창조정부기획관, 조직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2017년 9월 이낙연 전남지사의 국무총리 지명으로 공석이 된 전남지사 권한대행을 맡는 전라남도 행정부지사로 임명됐다. 이후 행안부로 복귀해 정부청사관리본부장, 정부혁신조직실장을 지내고 2020년 8월 인사에서 차관으로 승진했다.
2021년 11월 26일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에 취임해 지역 정보화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