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사업종료를 선언한 푸르밀이 지난 4월 말 서울 본사 부지와 건물을 담보로 부동산 신탁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푸르밀은 당시 회사 매각을 결정하고 인수자로 꼽힌 LG생활건강과 접촉하는 중이었다. 기업 매각을 위한 정밀 실사 직전 자산 담보 대출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푸르밀은 지난 4월 27일 하나은행으로부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본사 부지와 건물을 담보로 신탁 대출을 받았다.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지만 채권최고액은 60억원 규모다.
푸르밀은 대출 실행 직후인 지난 5월부터 회사 매각을 위해 LG생활건강과 SPC 등 인수자와 접촉했다. 기업 인수를 위한 실사를 진행한 두 회사는 인수를 포기했고 매각은 결국 불발됐다.
매각 실사 직전 부동산 신탁 대출을 실행한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게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A은행 투자금융 담당자는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아봐야 하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라면서 “매수자 입장에서 매도자가 실사 전 부채를 일으키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IB업계 전문가는 “기업 인수합병을 위한 협상에서 (푸르밀 측에) 불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운전자금이나 단기 차입금 상환을 위한 조치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B금융권 관계자는 “올해까지 적자를 내면 완전자본잠식 가능성이 있어 보이며 영업손실이 지속돼 사업을 영위할 운전자금이 부족해 대출을 받았을 수 있다”면서 “대출 금액에 크지 않아 차입한 사실만 보면 어떻게든 살려서 매각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인수 협상을 검토한 두 회사는 모두 푸르밀이 보유한 콜드체인과 가공유 생산력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종 인수가 무산된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설비 노후화와 유가공 산업이 하향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지만 오너 일가가 과도한 몸값을 제시했거나 이면계약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남양유업의 경우 오너 일가가 이면 계약을 주장하며 한앤컴퍼니와 경영권 소송을 벌이고 있다.
푸르밀 사태는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일방적인 사업종료와 정리해고에 약 350명 직원과 대리점주가 반발하고 있고 납품처들도 계약 위반을 검토하고 있다. 경영진이 사업 종료 전 자구 노력보다 안위를 챙겼다는 도덕성 논란도 불붙고 있다.
푸르밀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소비자 성향에 따른 사업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의 영업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특히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2018년 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을 했고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영업손실액은 89억원, 113억원, 124억원으로 점점 불어났다는 것이다.
노조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임금 삭감과 공장 인원 축소를 감내했지만 신 회장의 급여는 그대로였고 심지어 올해 초 퇴사하면서 퇴직금 30억원까지 챙겨갔다”고 지적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
매도 직전 대출 발생 이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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