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1960년 이전에는 지방과 서울의 집값이나 땅값이 비슷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건설 경기에 힘입어 근대화·도시화하면서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심화하기 시작했다. 수요·공급 법칙이랄 것도 없이 부동산 가격 격차가 벌어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 20~40대 청년층의 54.5%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구감소 시대에 진입하면서 인구 자연 감소와 더불어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20년 기준으로 수도권에 총인구의 50.24%가 거주하고 있다. 이는 지방소멸 현장을 여실히 보여 준다.
지방소멸에 대해서는 약 20년 전부터 그 심각성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에 이르러 한 해 수십 개 대학이 학생 수 절대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으면서도 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음을 보고 참담함을 느낀다.
이러한 위기의 절박함과 함께 나타난 키워드가 리빙랩이란 용어다. 리빙랩(living lab)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에서 숨 쉬는 실험실이란 뜻이다. 리빙랩이 진가를 발휘하며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 영역이다. 리빙랩은 꺼지지 않는 창의성에 기반을 둔 일종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 현장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비전 없는 시대에서 리빙랩은 살기 위한 본능의 선택적 시도로, 통합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전남의 경우 인구소멸 위기 지역으로 22개 시·군 가운데 16개 군이 분류됐다. 그것도 가장 심각한 지방소멸 지역이다. 전남도는 5년 전부터 전국 최초로 지역 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인 전남청년마을로사업을 기획하고 청년 인구 유치와 청년실업률을 낮추고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한 리빙랩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청년일자리사업 성공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했으며, 지역사회 문제해결형 리빙랩의 성공 사례이자 모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의 노력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우선 전국 1000대 기업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800개가 넘는 기업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수도권 매출 비중 또한 84%가 넘는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심 경제체제 고착화로 지방 중소기업 제품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 판로 부족에 따른 매출 부진 등으로 지방 중소기업의 성장 한계와 경영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은 더욱더 심화하고 있고, 지방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감소하는 등 고용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육성 정책이 가져다준 대표적인 폐해가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 심화 및 지방소멸을 낳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삼성, 현대, SK, LG 등 대기업이 지난해 미국에 4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국가소멸을 앞당길 수 있다. 새로운 공장을 국내가 아닌 미국에 짓기 위해 수년간 수백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가 없는 국내 투자 소멸의 폐해라 할 수 있다.
지역소멸은 단순히 인구감소만이 아니다. 지방소멸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국가소멸과 동일하거나 더욱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와 지역이 함께 해결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지방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광주시 경우를 보면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돼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멤버가 됐다. 창의산업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광주의 문화적 자산과 창의력에 기초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도시와 협력해 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역에서 지역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우선순위를 따져 나열하고 분류하고 연결 짓고 일상 언어나 추상적인 것을 과학적 언어로 바꿔서 사회문제 해결형 과제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이 투자해서 쓸모없는 것으로 내팽개쳐진 지방의 고유자원을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비대칭 전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방과 국가 모두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윤제정 전남바이오산업진흥원 팀장 jjyoung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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