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분야도 일종의 유행이 있다. 특정 슬로건 내지 기술적 화두 등을 제시하는 표어가 유행하며 관련 기술이 일순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시티' 개념 역시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IT) 혁명 촉발 이후 IT를 도시에 접목하는 U-시티 '유비쿼터스시티'라는 개념이 주목받았다.
최근 스마트시티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급증하는 도시인구 증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대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호 소통해야 하는 도시민에게 안정적인 데이터 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 요인을 제공해 주는 데 있어서도 스마트시티가 유용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패션 분야에서도 복고 열풍이 불었다고 해 과거와 완벽히 동일한 컨셉의 옷이 유행하는 게 아니듯 기술 분야 유행 역시 이와 유사하다. 시대적 요구사항에 따라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스마트시티 구축 사례를 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우 스마트그리드, 스마트미터, 전기자동차 등 기술을 활용해 2025년까지 CO₂ 배출량을 1990년 기준 40%까지 감축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영국 글래스고는 교통, 범죄,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영국 최초의 스마트시티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응한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절감사업을 중점 추진했으며, 기존 도시 공간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도시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는 형태의 스마트시티 사업이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의 스마트시티 사례는 초기 U-시티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시티 구현을 모색하던 시절에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당시 전기자동차 등은 도시를 구성하는데 고려해야 할 대상조차 아니였고 환경 문제 역시 상하수도, 녹지환경 등이 주된 고려 요인이었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수급 체계 자체를 변화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2000년대 초반 모색된 스마트시티와 지금의 스마트시티는 전혀 다른 방식임을 보여준다.
국내 스마트시티가 주목받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HP의 Cooltown과 MS의 MHome 등 민간기업에서 제안하는 실험적 전시시설 또는 통신인프라 구축사업 수준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 유럽 등 해외 지역에서 국가 및 도시 목표에 따라 스마트시티 추진을 상이한 방식으로 추진하기 시작하고 이와 함께 민간기업 IBM, 시스코, 후지쯔 등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이 '도시'를 솔루션 비즈니스의 블루오션으로 인식하면서 우리 역시 스마트시티를 바라보는 관점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가 스마트시티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히려 미국의 관점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는 듯하다. 미국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25개 신기술에 1억6000만달러 이상의 연방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하는 'Smart Cities Initiative'를 발표하면서 스마트시티 국가전략이 시작됐다. Smart Cities Initiative의 목적은 미국 경쟁우위 사물인터넷 분야의 실제 테스트베드 적용 및 협력모델 구축, 민간 IT 기술을 기반으로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시민, 기업, 비영리기관 간 협력 강화 등 비즈니스와 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스마트시티를 통해 다양한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는 데 많은 관심이 있는 상황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스마트시티의 개념이 어느 정도 진전이 있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은 또 다른 어떤 변화를 맞게 될 것인지 지켜보자.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