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한숨 돌린 제2금융권…고민 깊은 韓銀

정부 '50조 유동성 대책'에 시장 반색
채권시장 단기 분안요소 해소 전망
카드·캐피털 등 여신회사도 환영
한은, 긴축·재정확대 엇박자 우려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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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을 결정하면서 제2금융권이 반색하고 있다. 유동성 공급 등 채권시장 내 단기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자칫 돈줄 죄기와 돈 풀기에서 엇박자를 낼 수 있어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휴일이었던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50조원+α'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키로 하면서 돈줄이 말랐던 제2금융권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우선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많은 돈을 댄 증권사가 가장 크게 반색했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6월 말 국내 증권사의 전체 채무보증 규모가 약 48조원임을 감안하면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조치는 시장 불안을 완화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자금조달 등에 비상이 걸렸던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도 한숨 돌렸다.

지난 21일 기준 여전채(AA+, 3년물) 금리는 6.082%를 기록했다. 이는 2.75%를 기록했던 올해 1월 말과 비교하면 3.332%포인트(P) 상승했다. 1년도 되지 않아 여전채 금리가 두 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이날 AA등급은 6.164%, AA-등급은 6.349%로 각각 집계돼 금리가 더 올랐지만 안정세를 되찾을 전망이다. 현재 카드사는 신한·KB국민·삼성카드가 AA+등급, 현대·하나·우리카드가 AA등급, 롯데카드는 AA-등급으로 각각 분류돼 있다. 캐피털사는 현대·산은·신한·우리금융·하나·KB캐피탈이 AA등급이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 여파로 채권시장 유동성이 급격하게 경색되면서 여전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의 일시적 조치로 채권시장이 부분적으로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레고랜드 디폴트와 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13조9200억원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54조3400억원까지 더하면 회사채 만기 규모 68조2500억원에 이른다. 회사채는 만기가 되면 약정액을 지불 못하거나 새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으면 디폴트에 빠진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정부 발표에 공감한 한은이지만 골머리를 앓고 있다. 2금융권에서 채권시장 경색을 빌미로 한은에 돈을 더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를 만나 '금융안정특별대출'을 재가동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 한은이 회사채를 담보로 받고 대출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은은 매입 가능한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국채 외에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금융안정특별대출이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가동은 뺐다. 돈줄 죄기와 돈 풀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엇박자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들 정책을 지난 코로나19 사태 때 약 1년간 가동한 적 있다.

한은은 기로에 서 있다. 현재 기준금리 연 3.0%를 다음 달 3.5%로 올려 시장에서 돈을 더 거둬들일 것이라는 게 시장 컨센서스였다. 하지만 주식과 더불어 금융시장 두 축인 채권시장이 위기에 빠지면서 물가안정에서 금융안정으로 무게추가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다만 정부의 이번 지원에 대해 이 총재는 “기업어음(CP) 시장 중심으로 미시적인 것이라 거시 통화정책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을 이어가겠단 뜻이다.

[표]국내 회사채 만기 예정 규모

'돈맥경화' 한숨 돌린 제2금융권…고민 깊은 韓銀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