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혁명과 소프트웨어

[ET단상]혁명과 소프트웨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고려가 망하자 정몽주와 뜻을 함께하던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쓴 시의 일부분이다. 정권이 바뀌고 함께 일하던 사람이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귀향을 갔으니 원통하고 허망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으리라. 약 610년 전의 일이다.

1900년대 초 수백년 동안 사용되던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거리를 뒤덮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년 남짓이었다. 자동차 혁명으로 졸지에 직장을 잃은 당시 마부는 극렬히 저항했지만 민심이 받아주지 않았다. 마부로 일하던 인걸이 없어진 것은 물론 이때는 산천마저도 의구하지 않았다. 도로가 포장도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된 계층은 환호를, 이때 일자리를 잃은 마부는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다.

또 다른 혁명도 있다. 1443년 조선의 4번째 왕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기득권의 전유물이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신분 고하 막론하고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득권 세력이 극렬히 저항했다. 결국 훈민정음 반포 450년 만인 1894년 고종 때 국가 공식문서에 한글을 섞어 쓴다고 공식 인정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중국 눈치를 보던 기득권도 중국 글자에서 이제는 탈피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리라.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글자 플랫폼이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산천이 의구한 것은 물론 인걸이 오히려 늘어난 개혁인 것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명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알고 있는 소프트웨어(SW)혁명이다. 딱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대충 집에 있는 컴퓨터로도 기계학습을 통해 인공지능 응용 SW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부터라고 짐작한다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활동 거의 대부분에 컴퓨터 SW가 개입함으로써 산업 생산성과 생활 효율성이 급증하게 되자 이를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혁명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에 해당될까 산천도 의구하고 인걸도 넘쳐난다에 해당될까. 이 혁명이 성공하기 위한 공식을 한글 창제에 대입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인공지능 (AI) SW 등 SW의 생활화가 기득권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세상의 정보가 흘러가게 해 준다면 성공하는 혁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글 반대 세력이 엄존하던 것처럼 SW 혁명을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이 등장할 법도 한데 없다. 그 이유는 혁명의 주체가 이익단체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자! 코딩하는 종업원! 이들은 변호사나 의사와 달리 개발자 수를 늘리거나 전 국민 코딩 교육이라는 국가 방침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도와주고 있다. 변호사나 의사가 로스쿨·의대 증원에 목숨 걸고 반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이 혁명은 성공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대학 대상으로 발주하는 사업 가운데 SW중심대학이라는 사업이 있다. SW 전공학과 학생에게는 코딩 교육을 더욱더 시키고, 더 나아가 SW 전공자가 아닌 학생에게도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좀 더 나아가 SW를 지역 사회로 전파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반영하는 학교 제도까지 갖추면 연간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학은 이 사업을 수주하고 싶어 안달이고, 정부도 관련 예산을 매년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몇 년만 더 가면 전국의 대학이 SW 중심으로 교육하는 대학으로 변화할 것이다. SW 혁명 한가운데에 서 있는 SW 전문가들은 잊으면 안 된다. 'SW 혁명이 훈민정음 창제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정보 접근에 뒤처지는 국민이 없게!, SW 발전이 고통스러운 마부를 양산하지 않게!, SW가 부정부패의 가능성을 줄이게!, SW가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게!' 하는 방향으로 SW 혁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이러한 혁명을 610년 후 길재가 목도했다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五百年 都邑地를 自律走行 電氣車로 돌아드니 山川도 依舊하고 人傑은 넘쳐나네. 어즈버 太平烟月이 現實인가 하노라.

이종우 숙명여대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단장(IT공학전공) bigrain@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