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산업은 속도전…규제혁신도 빨라야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훌륭한 기술과 든든한 자본력이 있다고 기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미래 신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최대 걸림돌은 다름 아닌 각종 '규제'다.

지난 5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대 신산업인 인터넷 플랫폼, 바이오헬스, 핀테크 분야 국내 주요 기업 6개사 시가총액 합계는 중국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 시총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립 시기나 비즈니스 모델은 비슷한데 시총 차이가 1대 18까지 벌어진 이유는 뭘까. 국내 경우 이익집단과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인터넷 플랫폼)했거나, 안전과 생명 혹은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사전 규율이 엄격해 비즈니스 확대에 제한(바이오, 핀테크)을 받기 때문이다. 이는 곧 두 국가 간 혁신 속도 차이로 이어진다.

이뿐만 아니다. 1050개사에 달하는 세계 유니콘 기업 중 우리 기업 비율은 1.14%(12개사)에 불과하다. 그간 주력산업을 키워온 막강한 기술력에 견줘볼 때 정작 미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할 유망 신산업 성장은 매우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기술은 속도가 시장 선점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야 도전이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이다. 신사업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해도 되는지 일일이 행정 당국에 물어봐야 하거나 지자체나 부처별로 유권 해석이 달라지면 기업은 과감히 사업을 전개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투자금 유치도 힘들다. 이는 글로벌 단위 시장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만 한쪽 바퀴가 빠진 채 굴러가는 자동차 꼴이 되는 셈이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는 자율적인 민간 주도 성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혁신을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로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신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규제를 발굴하고 낡은 법령 정비를 지원하면서 우리 정부 규제혁신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그 대표 사업이 규제자유특구 제도다. 도입 4년 차를 맞은 현재, 전국 14개 시도 내 32개 특구가 지정·운영 중이며 신기술 사업화에 필요한 테스트베드(실험 공간)를 제공하고 비수도권 지역기업 혁신성장을 지원한다.

현재 특구 내 71개 실증사업이 진행 중인데 제주 '개인 전기차 충전기 공유 서비스', 강원 '액화수소탱크 탑재 선박 실증'을 포함한 9개 사업은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실증되는 것이다. 그간 관련 규정이 없어 시도하지 못했던 신산업 분야 최초 실증이 다수 이뤄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실증단계를 넘어 시장에 정식 출시되려면 사업화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지난 10월 26~27일 서울에서 '규제자유특구 챌린지'를 개최했다. 특구 내 사업화할 만한 아이템을 발굴하는 도전의 장이자 기업 현장 규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등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이 행사에서는 사전에 진행된 전국 단위 경쟁에서 높은 사업성을 검증받고 본선에 진출한 14개 기업 및 기관들이 수상과 포상금의 영광을 안았다. 수상한 과제 중 일부는 투자금도 지원받는다. 향후 사업화 성공 사례가 다수 이어진다면 앞으로 특구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더 많이 모여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바야흐로 산업 대전환의 시대다. 우리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기후 변화 같은 메가 트렌드에 적시 대응하려면 더 빠르게 도전하고 빠르게 실패해야 한다. 정부는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숨 가쁜 속도전에 임하는 기업들을 위해 혁신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줄 의무가 있다.

고급 인재 확보와 자금 유치 지원 못지않게 규제 시스템을 신속하게 개선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KIAT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업들이 신산업에서 신바람 나게 활약할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 조성자로서 더욱 노력하겠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 bjmin@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