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로 얼어붙은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결국 한국은행이 직접 나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7일 회의를 열고 국내은행이 한국은행과 대출이나 차액결제 거래를 위해 맡겨놓는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 9개 공공기관채권 등을 추가하기로 의결했다. 한은은 또 최근 자금난을 겪는 증권사 등에도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다음 달 1일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적격담보증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인정해 주는 담보물이다. 현재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 신용증권,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특수은행채만 포함된다. 하지만 이날 결정으로 다음 달 1일부터 은행은 은행채와 한국전력,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도 적격담보증권으로 한은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은행이 적격담보증권에 은행채를 활용하면 은행채를 더 발행하거나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은행에 묶여 있던 돈이 풀려 회사채나 여전채 등 다른 회사채를 사들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시중에 유동성 공급이 원활해지는 것이다.
한은 “국내은행이 은행채 등으로 담보를 납입해 확보하게 되는 국채, 통안채 등을 통해 유동성 규제비율 준수 부담을 완화하고 향후 장외외환파생거래 증거금 추가 납입 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은은 2020년 4월부터 1년간 유동성 공급을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또 한은은 이날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 제공비율을 내년 2월부터 기존 70%에서 80%로 높이려던 계획도 내년 5월로 3개월 유예했다. 은행이 차액결제 담보로 한은에 채권을 덜 맡겨도 돼 역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
한은은 적격담보증권 대상 채권을 넒힘으로써 약 29조원, 차액결제이행용 비율 인상 3개월 유예로 약 7조5000억원 등 36조5000억원의 은행권 담보 부담 축소와 유동성 여력 확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한은은 증권사와 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6조원 규모로 RP를 매입해 유동성 공급에 나서기로 했다. 만기가 짧은 '91일물 이내' RP만 매입하는데 이는 시중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다.
RP 매입이 금리 인상이라는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한은은 “이번 RP 매입은 금융안정 차원의 시장안정화 조치로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다시 흡수되기 때문에 추가 유동성 공급 효과가 거의 없으므로 현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며 “유동성의 추가 공급이라기보다는 유동성 조절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금융안정특별대출과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설치 등은 이날 논의하지 않았다.
[표]한은,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 주요 내용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