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가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앞다퉈 고금리 저축보험을 내놓는 가운데 대형사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상반된 모습이다. 은행이나 경쟁사 금리에 맞춰 수신금리를 따라 올리고는 있지만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상황은 아니라는 게 대형 보험사들 판단이다.
최근 기준금리가 급등하자 각 금융사가 일제히 예금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은행과 저축은행이 고금리 예금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에 고객 돈을 기반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생보사들도 자금 유치를 위해 고금리 저축보험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 8월 푸본현대생명이 연 4.0% 고정 상품을 출시해 3일 만에 5000억원 어치를 완판했다. 연이어 지난달 동양생명(4.5%), 흥국생명(4.2%), 하나생명(4.1%) 등이 4%대 저축보험을 선보였다. 주로 국내 중소형 생보사와 외국계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엔 IBK연금보험이 5.3%짜리 저축보험을 내놨다.
반면 대형사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교보생명(4.55%), 한화생명(4.5%), 삼성생명(4.0%)도 이달 들어 저축보험 금리를 일제히 높였지만 영업 확대까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사가 저축보험 판매 확대를 망설이는 이유는 과거 고금리 상품 판매 '트라우마' 탓이다. 1990년대 6% 이상 확정 금리형 상품을 팔았다가 2000년대 들어 저금리 시대로 바뀌면서 6%에 한참 못 미치는 3~4%대 자산운용수익률을 기록했다. 거둬들인 보험료보다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이 많은 '역마진'이 발생해 보험사 재정이 휘청였다.
일부 생보사는 아직도 계약자에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대비해 보험료 중 일부를 쌓아놔야 하는 책임준비금 중 6% 이상 고정금리 비중이 20%대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다른 생보사가 금리를 올리니 한 달에 한두 번 상품을 개정해 따라 올리고 있지만 이는 신규 고객 유치보다 기존 만기 고객 재유치 차원”이라고 전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대형사는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이 부족하지 않아서 저축보험을 공격적으로 유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며 “부채 등 건전성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생명보험은 과거 고금리 시절 판매한 고정금리형 저축성보험의 부채 부담금리가 금리 차이에 따른 역마진이 발생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며 “(고금리 저축보험 판매 증가는) 부채 부담금리 하락과 역마진 완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이달까지 저축보험을 판매하던 생보사 중 3곳이 판매 중지 결정을 내렸다. 회사별로 총한도를 설정해 운영하는 등 보수적인 상품 판매를 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표] 주요 생보사 저축보험 금리 (자료=각 사 집계)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