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80년 가을 이맘때쯤 우리 정부는 쌀을 찾아 세계를 누비고 있었다. 연초부터 이어진 차가운 날씨로 벼 작황이 크게 나빠졌고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 당장 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음 급한 정부는 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일본에서 쌀을 가져올 수 없었고 미국에 도착해서야 쌀을 구할 수 있었다. 국제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산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비싼 가격을 지불했음에도 정작 우리가 필요할 때 그 쌀을 들여오지도 못했다.
우리가 먹는 윤기 있고 차지며 먹을 때 밥알이 살아 있는 쌀은 흔히 중립종 또는 자포니카 계열 쌀로 불리는데,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당시 캘리포니아 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두 개 협동조합이 필요한 물량을 내주지 않아 우리나라는 쌀이 가장 필요했던 1980년 말 들여오지 못하고 다음 해인 1981년 연말 이후에나 들여올 수 있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먹거리 문제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쌀이 넉넉하게 생산된 덕에 우리나라는 먹거리 문제만큼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최근 먹거리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해진 듯 보인다. 그러나 먹거리 문제로 어떤 국가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어떤 국가는 정권이 바뀌기도 했다. 2010년대 아랍 독재국가들을 무너뜨린 것도 결국은 먹거리 문제에 비롯됐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최근 쌀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쌀이 주식인 만큼 어떤 경우에도 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이나 정부 모두 이견이 없는 듯하다. 다만 그 방법을 두고는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한 쪽은 쌀값이 폭락하면 소득이 줄어든 농가가 농사를 포기할까봐 쌀의 의무 매입을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아도 과잉인 쌀 생산이 더 늘어날까 전전긍긍이다. 양쪽 모두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쌀 문제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먼저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꼭 필요한 양을 산정해보자. 지금은 외국에서의 수입 가능성 및 운송 시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해 3개월 소비물량을 비축해두고 있다. 실제 3개월은 동남아 등지에서 들여올 때 걸리는 시간으로 미국에서 들여올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다음으로 감소하는 인구와 증가하는 고령인구 등을 고려한 적정 소비 물량을 산정해야 한다. 전체 인구가 자연 감소세로 전환된 데다 노령인구까지 급증하면 1인당 소비량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추가로 고려할 것이 곡물 수입이 안 되는 비상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곡물 수입이 중단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축산물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축산물을 통한 칼로리 섭취가 제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쌀을 통해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해야 하는데 이것은 쌀 소비를 늘리는 요인이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면 향후 우리나라에서 확보해야 하는 쌀의 양을 산정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단위면적당 생산량 등을 적용하면 필요한 면적도 산출할 수 있다. 이렇게 산정된 물량은 일종의 쿼터(quota)로 묶고 정부가 공공비축이나 시장격리 목적으로 매입할 때 그 물량을 우선 매입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 정부가 쿼터 물량만큼은 책임 져주는 방식이다.
정치든 경제든 어느 한 쪽이 항상 옳고 항상 선인 것은 없다. 필요에 따라 대안을 찾고 답을 구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농민은 쌀을 팔아 최소한 먹고 살 정도는 돼야 하고 일반 국민은 그 쌀로 인해 먹거리가 부족한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 단순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고, 정부는 적절한 제도와 정책으로 그 해결책을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농민과 일반 국민 모두 만족시킬 만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윤식 경상국립대 교수 yunshi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