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는 충격이었다. 대국을 보기 전까지 바둑은 정보기술(IT)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은 보기 좋게 바둑 천재의 패배를 받아냈다. 인간의 독자 영역이라고 생각한 곳에 인공지능(AI)이 침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후 수많은 분야에서 AI 기술이 적용됐다.
이미 AI는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다. 테슬라는 적당한 교통 흐름이 있는 곳에서 차량을 제어한다. 휴대폰으로 셀카 몇 개를 찍으면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을 입력하면 이후 스마트폰은 내가 셀카를 찍을 때마다 내 이름으로 사진을 검색하게 해 준다. 스마트워치는 손을 쓸 수 없을 때 말을 문자로 전송해 준다.
AI는 단순히 이 같은 편의 영역만을 파고들지 않는다. DALL.E라는 AI에 몇 문장을 입력하면 일반인이 그린 것보다 수준 높은 그림이 나온다. 계속해서 문장을 다듬다 보면 사람이 그린 것보다 더 창의적인 그림이 나온다. 전문가 영역까지 넘보는 셈이다. 하지만 AI나 신기술이 인간의 직업을 완전히 뺏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 전에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픈AI를 사용하면 기사를 쓸 수 있는 세상이라 알려줬다. 하지만 기사를 쓴다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취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어떤 기사가 알려져야 하는지 끄집어내는 것은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 했다.
이처럼 AI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더라도 대체 불가한 일이 있다. 세무 산업은 대표적으로 기술 개발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다. 세법을 빠짐없이 통으로 암기한 AI가 세무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AI가 세무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업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없어질 산업이 될 수도 지위를 공고히 하는 산업이 될 수도 있다. 세무법인을 운영하면서 느낀 세무사·세무법인의 존재 이유는 중소사업자가 각자 업의 본질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가까운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AI가 인식, 측정, 자동화, 효율화 등으로 산업에 도움을 줄 때 세무사는 창의적이며 비정형적인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세무사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혜움에서는 단순 신고, 정기적인 반복 업무, 룰 기반 세 감면 계산 등 많은 부분을 기술 도움으로 사람이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세무 전문가인 혜움 구성원은 사업자에게 세무를 뛰어넘은 다양한 고객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고객의 비용을 어떤 항목으로, 무슨 기준으로 분류하고 처리할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고객이 부담하는 세금이 달라진다. 이는 아직 AI가 처리할 수 없는 전문 영역이다.
최근 출시한 경정청구 서비스인 더낸세금도 이런 맥락과 통한다. 경정청구는 세무 전문가가 1, 2개월 정도 투입돼 기존에 신고한 내역을 분석하고 미적용한 세법을 찾아 더 낸 세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기존에 이 같은 경정청구는 세무 전문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했기 때문에 환급 금액이 큰 곳에서만 가능한 서비스였다. 자사가 출시한 더낸세금은 AI를 활용, 세무 전문가가 쉽게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지원한다. 이를 기반으로 세무 전문가가 환급 내역에 대한 고도화된 판단만 하게 함으로써 경정청구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레거시 산업 전반적으로 이 같은 형태의 혁신이 필요하다. 상생을 위해선 스타트업이 레거시 산업을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고 레거시 산업은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지혜가 필요하다.
이재희 혜움 대표 jaehee.lee@heumtax.com
-
손지혜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