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는 결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 투자사 대표가 '갑작스러운 벤처투자 시장 위축으로 경영 위기를 맞은 스타트업 대표도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단호하게 이같이 말했다. CEO는 과정이 어떠하든, 어떤 이유가 있든 모든 결과를 책임지는 자리라는 의미다.
스타트업 대표를 위한 변명을 한다면 최근 위기설이 나오는 회사는 도덕적 해이 또는 방만한 경영과 거리가 있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사업 규모를 키워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성공 루트'를 따랐다. 2014년 로켓배송 출범 후 올해 3분기에 첫 분기 흑자를 낸 쿠팡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은 투자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며 성공에 다가가려 애썼다.
그러나 활화산 같던 벤처투자시장의 상황이 바뀌면서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기조 등으로 얼어붙었다. 돈줄이 마르자 성공 모델은 거꾸로 뒤집혔고, 대형화 전략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기존 방정식은 유효한 모델이 아니게 된 것이다. 시장은 냉정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시장의 상황 변화를 예상하지 못해 발생한 경영자의 오판이라는 게 현실이다. '무한책임'에 뒷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스타트업 업계는 요즘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비즈니스모델(BM)을 점검하며 수익성 극대화에 나서는 동시에 비용 감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감축 소식도 들려온다. 한 미디어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는 과거 투자 유치 불발로 직원 전원을 권고사직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권고사직을 통보하기 위해 회의실로 불러들인 직원들이 서로 장난치며 희희낙락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솔루션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투자 유치에도 성공하며 업계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심스러운 어조에서 대표가 짊어진 책임감을 어렴풋이 느껴졌다.
무한책임이란 말의 묵중한 무게감을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최근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한 스타트업 대표가 투자자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메일에는 비즈니스 재정비가 투자자에게 주는 재무적 이익,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교훈과 이를 바탕으로 세운 계획 등을 담았다고 한다. 일방적 책임 전가가 아니라 묻고 따져야 할 무한책임은 이런 것 아닐까.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