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로봇산업 트렌드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로봇산업은 2030년 1600억달러 규모로 연평균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인구 고령화, 로봇 가격 하락, 삶의 질 향상 추구 등이 로봇 도입을 촉진하면서 로봇산업 성장 축이 제조용 로봇에서 서비스 로봇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비스 로봇은 음식 조리나 서빙은 물론 음식 배달, 노약자 돌봄, 상업용 청소, 안내, 보안과 경비, 수술과 재활, 건설 현장까지 활용 범위가 다양해지면서 어느덧 우리 일상에 성큼 다가왔다.
글로벌 서비스 로봇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약 30%를 차지하며 세계 로봇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의 '로봇 굴기'로 국내 시장 잠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저가 가격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국내 청소 로봇 시장의 54%, 서빙 로봇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향후 배송 로봇 시장 잠식 우려도 큰 상황이다. 국내 로봇산업 생태계에 위기감이 조성되고 데이터 해외 유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중국산 방역 로봇에 자사 로고를 붙여 미국에 판매하고, 또 다른 대기업은 자체 개발 대신 중국산을 활용해 자율주행 로봇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로봇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및 노동인구 감소 대응 차원에서 로봇산업에 집중 투자했는데 공격적 투자와 대규모 내수시장으로 인해 중국 로봇산업 경쟁력이 급속히 향상됐다. 우리 업체가 경쟁 우위를 확보하던 감속기와 서보 모터, 제어기 등 핵심 부품은 물론 제어 알고리즘 및 SW와 통신·관제시스템에서도 이대로라면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기술력에서는 중국이 한국보다 근소하게 열위이지만 쿠카(KUKA)와 같은 세계적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빠르게 선도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ICT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계 강화, 다수 중소기업 결속을 통한 중저급 부품과 SW 대량 공급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전폭적인 정부 지원과 대규모 내수시장을 활용한 신제품 개발 및 상용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로봇 클러스터를 조성한 업체에 시설 투자금 10% 환급 및 기업 이익 20%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하며, 정부 혜택을 받은 중국 로봇 기업체는 한국 제품의 절반 수준으로 제품 가격을 낮추는 등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 및 자국 우대 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내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는 중국 로봇 진출에 대해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국산 로봇의 수요 확보가 필요하다. 정부 R&D, 실증, 대규모 공공수요 연계를 통한 국산 로봇의 초기 수요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 제조 전문 대-중소기업, 로봇 플랫폼 기업, 연구기관 간 협업체계를 구성해 국산 로봇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수요 기반 민간 중심의 부품 공용화 및 공통 플랫폼에 대한 논의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 환경에 적합한 자율주행로봇 제도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품 성능·안전 관련 실내 배송 로봇 KS표준 개정 및 실외 배송 로봇 KS표준 신설을 조속히 완료하고, 이와 함께 국회에 제출된 자율주행로봇의 제품인증 및 보도 통행 안전기준에 대한 '지능형로봇법 개정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셋째 로봇이 취득한 개인·공간정보 데이터의 국외 유출 방지가 필요하다. 로봇을 클라우드로 관제할 때 개인정보 또는 공간정보 데이터에 대해 현지 서버 사용 의무화를 검토하고 국내 사용자의 개인정보 및 공간정보 데이터의 국외 유출을 차단해야 한다. 또 산·학·연 협력을 통한 자율주행 로봇 데이터 표준화를 추진하고 로봇 취득 공간정보 활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데이터 공유규범을 수립하며 데이터 품질 확보를 위한 평가 인증제도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넷째 기본적으로 로봇 분야 원천기술 및 SW 인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핵심 부품 및 SW 중심으로 챌린지형 R&D 지원을 통해 최고 기술국 대비 기술 격차를 축소하고, 핵심 부품과 SW 등 기술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AI 기반 지능형 로봇의 기술 고도화와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중점 분야를 선정하고 단계별 목표를 설정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 기업 수요맞춤형 인력 확보를 위해 로봇용 SW 중심의 석·박사 교육 과정을 추가로 신설, 로봇 활용 서비스·제조 혁신의 첨병으로 육성해야 한다. 다섯째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로 추진되고 있는 '국가 로봇 테스트 필드사업'의 정책사업 선정 및 조기 추진이 필요하다. 서비스 로봇 관련 기업이 규제자유특구 형태의 상시로 활용할 수 있는 실제 환경 테스트 시설을 갖춤으로써 신제품 상용화를 앞당기고, 국내 로봇 기업의 표준화 및 인증 대응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 전쟁과 패권 다툼 속에 '우리는 중국 성장과 함께할 것인가 미국 시장에서 세계의 공장 중국을 대신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나아가 두 선택 모두를 할 수 있을까'라는 기로 앞에 서 있다. 무슨 전략을 펼치든 우선 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shon@kiria.org
<필자>1990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로봇기술본부장, 국가산업융합센터소장, 미래전략본부장, 융합기술연구소장, 부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한양대에서 메카트로닉스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겸임교수를 역임한 지능형로봇과 모빌리티, 융합기술과 산업정책 전문가다. 2021년 4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