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티스트를 발굴·관리하듯 인문학자에게도 지식을 큐레이션하고 강연하고 자문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소속사같은 스타트업이 필요합니다.”
이은수 서울대 인문대 교수는 15일 '한국IT리더스포럼 11월 정기조찬회'에서 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전례없는 과학기술 발전의 시대,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디지털 인문학과 그들을 체계적으로 양성, 관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 교수는 '과학기술을 위한 인문학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디지털 인문학을 소개하고 미래 한국의 연구개발(R&D) 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서양고전학 협동과정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디지털 인문학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 디지털 인문학이 우리나라가 영미권 연구를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탈추격형' R&D의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해왔던 과학기술의 일방적 개발·공급 방식이나 눈에 드러나는 사회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 전환기에 디지털 인문학자를 발굴, 양성, 관리하는 디지털 소사이어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능 거래 플랫폼 '숨고'처럼 창조적이고 역량 있는 인문학 인재를 연결하는 일이다. 다양한 전문가가 만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다.
이 교수는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 콘텐츠 제작에서 보여준 한국인 저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젊은 인문학자가 모여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9년 6월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이 영국 옥스퍼드대에 인문학 연구에 써달라며 2000억원을 기부한 사례를 소개하며, 인공지능(AI) 시대 인문학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오랫동안 연구한 고전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 인문학이 새롭게 소환된 배경을 설명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 고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라고 말했던 일화를 거론하며, 글로벌 기업 애플을 만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분석했다. 스탠퍼드와 MIT 등 유명 공대가 인문학 분야에서도 세계 최정상의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고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를 소개하며 “인문학자로서 지금이 바로 천천히 서둘러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