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이 가속화하며 신규화학물질이 급증하고 있지만 약 80%가 유해성정보 확인없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유해성정보 신고제도(CLP)를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하는 등 정보 사각지대를 해소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만 합니다.”
화학안전전문가들은 16일 서울 엘타워에서 열린 '화학안전정책포럼 종합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환경부는 소량의 화학물질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계기로 2015년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시행했다. 당초 법 시행 시에는 모든 신규화학물질을 등록 대상에 포함했지만 2019년 산업계 의견 등 수렴해 종전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수준인 연간 0.1톤으로 완화했다.
올해 들어 1톤 미만 신규화학물질 중 물에 잘 녹지 않는 물질 등 일부에 대해 등록 시 환경유해성 시험자료 2개를 생략했고, 연구개발용 0.1톤 미만 신규화학물질 수입 시 상세성분정보도 생략하는 등 소량 신규화학물질 제출서류를 간소화했다. 법 시행 후 수 차례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업계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상헌 경성대 교수는 “신규화학물질 등록 톤수 변경의 본질적 문제는 화학물질 유해성정보를 얼마나 확보하고 어떻게 위해성을 평가할 수 있냐는 것”이라면서 “화평법에서 톤수에 따라 제출해야 하는 유해성 정보 범위가 다르고, 이 제한된 정보로는 완성도 높은 화학물질안전평가 수행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신고 물질 대부분이 화학물질 분류 및 표시 정보가 없어 신규화학물질 등록 톤수를 0.1톤에서 1톤으로 변경할 경우 그간 등록으로 확보되던 소량 물질들의 유해성 정보를 신고제도로는 확보하기 어려워 정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작년 신고된 3334건 중 2724건(약 80%)이 유해성 분류 및 표시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유해성 분류 및 표시에 '해당없음'을 기재한 사례를 포함하면 약 97%가 유해성 분류 및 표시 정보 없다. 전문가들은 그간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이어오며 EU CLP에 기반한 현행 신고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정보 없는 물질은 '정보없음'으로 표시하고, 인체·환경 노출 최소화를 위한 자체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자발적 관리를 유도하자는 지적이다. 현행 신규화학물질 등록대상 물질을 연간 0.1톤에서 EU 수준인 1톤으로 상향 조정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산업계는 유해성 분류·표시 근거자료 출처 공개 시 지식재산권 침해여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는 유해성 분류·표시 근거자료 출처 제출·공개를 주장하고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는 유해성 정보를 확보하고 위해성 관리를 통해 안전 사각지대가 없다면 신규화학물질 톤수를 높이는 변화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면서 “신규화학물질의 톤수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유해성정보 확보와 안전한 사용이라는 핵심 질문을 도출하고 본격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 CLP 제도의 취지를 살린 유해성 정보 확보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산업계 요청과 제도 보완 시급성을 고려할 때 집중 논의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