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연말정산, 어떻게 하는 지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 당연한 것조차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지난 3월 한 시각장애 특수학교 교사로부터 접수된 '연말정산 자료 전자점자 파일 제공 서비스'와 관련한 국민신문고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내용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연말정산을 할 수 있었고 온전한 사회인으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 서비스가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했다는 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2002년 4월 개통한 홈택스는 '언제 어디서나 편안한 납세의무 이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처음 64종만 제공하던 서비스가 어느덧 784종으로 늘어났고 모바일 서비스도 개통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맞춰 부단히 노력해왔다. 누적 가입자 수 3200만명, 평균 전자신고 비율 98%, 민원 증명 발급 93% 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국민 사이트'가 됐다.
하지만 홈택스 담당 인력 100여명이 수천만명의 국민이 이용하는 홈택스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 구현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행여 “홈택스에만 들어가면 국민 누구나 쉽게 세금업무를 처리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선뜻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2001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정보격차 개념이 처음 정립되고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됐다.
이에 발맞춰 국세청도 장애인과 고령자가 차별 없이 웹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 품질 인증'을 획득했고 연말정산 소득공제자료 전자점자 서비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手語) 영상 제공, 빅데이터를 활용한 모두 채움 신고 서비스, 쇼트폼(short-form) 콘텐츠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꾸준히 확충해 왔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키오스크(kiosk)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이 햄버거를 주문하지 못해 그냥 돌아섰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세정 현장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한다. 예컨대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디지털에 익숙한 A씨는 국세청에서 제공한 '모두 채움' 서비스를 활용해 모바일로 10분 만에 세금 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장애인 B씨는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해 직접 세무서에 방문해 세금 신고를 했다. 결국 B씨는 시간적, 비용적 측면에서 납세협력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는 불이익의 문제까지 불거진다. 디지털 격차 해소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방에 소재한 한 특수학교에는 특별한 졸업 앨범이 있다고 한다. 앨범에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친구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3D 프린팅한 얼굴과 함께 목소리를 담은 음성파일을 탑재한다고 한다. 참으로 놀랍고 따뜻한 발상이다. 디지털 격차 문제가 단순 기술 수준의 문제를 넘어 사람을 앞세우는 따뜻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지난 16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및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인 지원을 위한 홈택스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과정에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장애인을 위해 먼저 움직일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관계자의 말은 현장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고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한다. 협약을 토대로 국세청은 장애인의 어려움을 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장애인단체는 국세청이 장애인 서비스를 개발하면 미리 사용해보고 보완해주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상호협력할 것이다.
아직도 세금 신고나 장려금 신청을 위해 세무 관서를 방문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고령층이다. 장애인과 함께 세심하게 챙겨야 할 소중한 납세자이다. 지금까지 '기능 향상'에 방점을 찍었던 홈택스를 '사람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으로 홈택스에서 소외되는 분이 없도록 서비스를 개발할 때부터 꼼꼼히 살피고 배려해서 '국민 누구나 편리한, 국민 모두에게 따뜻한 홈택스'로 거듭날 것이다. 국세청의 노력이 디지털 혁신과 사회적 책임에 큰 축을 담당하길 희망한다.
김태호 국세청 차장 kth1118@nts.go.kr
○김태호 차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제38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국세청 조사기획과장, 운영지원과장, 중부청 조사2국장,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 자산과세국장, 개인납세국장 등 조사 세원분야 주요 요직과 2021년 12월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후 2022년 7월 국세청 차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