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2>디지털 페이 시대, 돈과 맺는 관계 변화

[손병채의 센스메이킹]<2>디지털 페이 시대, 돈과 맺는 관계 변화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의 창업자는 지난 11일 파산 신청 이후 주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What'을 포스팅한 뒤 월요일까지 몇 시간에 걸쳐 알파벳 하나씩 'H' 'A' 'P' 'P' 'E' 'N' 'E' 'D'를 올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려 하는 그의 이 장난스러운 태도는 관련 부채 규모가 66조원에 이르고 100만명에 달하는 채권자들이 마주한 불안 및 비명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소중한 현실의 돈을 가상세계에, 결과적으로는 기부에 가까운 투자를 했음에도 '돈'에 대한 그의 이처럼 상반되고 가벼운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잃어버린 돈과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 컨설팅 회사 코그니전트(Cognizant)의 2017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경제 속 미국인들이 상시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건강·직업과 테러에 대한 공포마저 이긴 '재정적 불안감'이었다. 특히 이 불안감은 연금·보험·주택구입 등 장기적 전망에 기반을 두고 빠른 가치 확인이 어려운 투자에 사용되는 돈, 즉 슬로 머니에 대한 통제력 상실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한다. 이는 최근 직장 내 최소한의 역할로만 자신을 지키려 하는 조용한 퇴직, N잡러, 퍼스널 브랜딩, 파이어족, 나아가 코인 및 주식에의 과도한 투자와 대출로 집을 산 영끌족 등의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 내 재정적 불안이 미국 대비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예상케 한다.

무엇보다 이 만성화된 불안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기관은 다름 아닌 '은행'이다. 고객의 금융 데이터에 대한 뛰어난 접근성과 관련 전문성으로 사람들이 돈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에 가장 적합한 기관, 나아가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는 기관도 은행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지주들은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투자 및 성공에서 그림자로만 전락한 자신들의 입장에 불만을 표출해 왔다. 최근의 금융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앞으로 적극적인 전통 금융사들의 플랫폼 전쟁 참여가 예상되지만 기존 경쟁 기업들 대비 기술력 및 UI, UX의 차이 극복에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전통 은행들의 향후 디지털 금융 플랫폼 투자 기회는 고객이 더욱 개인화된 슬로 머니에 대한 경험을 돕는 것을 모색하는 지점에 있다. 다시 말해 은행이 고객들의 재정적 불안을 해소하는 '안정감'을 기술 투자의 기준으로 고려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산 관리 능력 배양을 도울 수 있다. 비자(VISA)로부터 시작된 전자화된 결제는 현재 카카오페이와 같은 슈퍼앱에 이르기까지 '돈의 이동성'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쉽고 빠른 결제는 예산 관리에 필요한 소비 감각을 잊게 했다. 현금이 일정 기간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가를 통해 우리는 재정 관리의 가치와 의미를 일상에서 습득하는 법을 배웠고, 철학자들은 이를 체화된 지식이라고 불러 왔다. 은행은 재정 안정의 물리적 상징으로서 이 예산 관리와 연결된 소비의 감각적 경험을 온·오프라인과 연계된 고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예측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 앞에서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며 특정 상황이 발생할 조건을 이해할 때, 해당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있을 때 안정감을 더 빨리 회복한다. 은행은 비록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어도 사람들의 재무 상태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과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영속적인 보관처로서의 전통적 역할을 드러낼 수 있다. 영속성은 시간적 안정성의 연결성을 의미한다. 은행은 과거·현재·미래가 있는 기관으로서 너무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기 때문에 어떤 변동이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디지털 금융 플랫폼 전쟁에서 은행에만 있는 회복력과 끈기를 고객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필요할 수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