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유통칼럼]닭과 돼지

최근 네이버가 보유하고 있는 버킷플레이스(오늘의 집), 발란, 밸런스히어로, 퓨쳐플레이, 트리플 등 6~7개 스타트업의 지분을 대거 매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POSHMARK)의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갖고 있던 스타트업의 주식을 처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초까지 인수금액 16억달러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2022년 상반기 현재 네이버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80%에 이르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기업가치를 대폭 할인해서라도 빠르게 매각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가격보다 싸게 매각하더라도 대부분 스타트업 설립 초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상당한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회사 상황이 어려워진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의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주주와 경영진 간 갈등이 증폭되고, 지난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서를 제출했다. 메쉬코리아는 지난해 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나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를 1000억원으로 낮춰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다.

투자자는 재무적 투자자와 전략적 투자자로 나뉜다. 이들은 투자 목적, 투자 기간, 규모, 기업가치 평가, 의사 결정 과정, 성과 평가 등이 매우 다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투자의 목적'이다. 재무적 투자자는 정해진 기간에 투자 수익을 극대화해서 회수(exit)하기 위해, 전략적 투자자는 혁신 기술이나 유망 비즈니스모델 및 우수인력 확보 등을 위해 각각 투자한다.

일반적으로 재무적 투자자는 전략적 투자자에 비해 투자 기간이 짧고 투자 규모도 적으며, 경영 관여도가 낮고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다. 벤처캐피털, 엔젤투자자, 사모펀드, 국부펀드 등이 대표적인 재무적 투자자다. 대기업들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전략적 투자를 한다. 최근에는 유니콘과 같은 규모 큰 스타트업과 중견기업도 전략적 목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으며,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도 전략적 투자자에 포함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닭과 돼지가 등장하는 비즈니스 우화가 있다. 어느 날 돼지와 닭이 길을 걸으면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다가 햄앤드에그 샌드위치 전문점을 함께 열기로 했다. 자신들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서 닭은 계란을 담당하고 돼지는 햄을 제공하기로 하고 대박을 기원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는 각자의 강점을 모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좋은 사업을 하는 것 같지만 계란을 제공하기로 한 닭은 조금만 노력하면 되지만 돼지는 햄을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갈아 넣는 헌신을 해야 한다. 닭은 자신의 일부를 참여시키는 것이고 돼지는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닭은 투자자, 돼지는 스타트업 창업자 입장이다.

재무적 투자자든 전략적 투자자든 항상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앙트러프러너를 원한다. 다시 말해 돼지를 찾는 것이다. 막대한 투자수익이나 혁신기술을 가져다줄 파트너를 발굴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으며 시작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투자자와 창업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투자자는 당연히 투자기업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회사에 전부를 건 앙트러프러너와는 달리 상황에 따라 여러 선택지가 있다.

재무적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한 펀드에서 여러 회사를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때문에 한 회사가 어려워졌다 해서 그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진 않는다. 손실을 최소화해 엑시트하고, 투자회사 가운데에서 잘되는 회사에 더 집중한다. 미래 전망이 어두워진 회사도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하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장 현명한 전략이자 당연한 행동이다.

전략적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사업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자연스럽게 스타트업과의 관계도 긴 호흡으로 생각한다. 기술개발이나 비즈니스 피벗 등의 전략적 목표를 2~3년이라는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수익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투자만 하고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특히 투자금이 작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라면 금세 관심이 사라지기도 한다.

전략적 투자자인 대기업이 갑자기 지분을 처분하게 되면 해당 스타트업은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생존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전략적 투자자가 손을 뗀다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시장에 주는 시그널은 굉장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해진 기간에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재무적 투자자가 주식을 매각하는 것과 달리 전략적 투자자가 투자회사와 충분한 사전 상의 없이 지분을 처분한다는 것은 미필적 고의로, 스타트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블랙 스완'의 저자로 유명한 나심 탈럽은 '책임과 행동의 균형'을 주제로 '스킨 인 더 게임'이란 책을 썼다. 중요한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그 결과에서 비롯될 수 있는 위험도 함께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킨 인 더 게임'은 '도박에 건 신체 일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도박을 위해 자신의 살점 1파운드를 건 것에서 유래했다. 어떤 판단과 선택을 내릴 때는 반드시 '책임과 행동의 균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이던 리 로스는 리더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합의효과'(false-consensus effect)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투자자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인지적 착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앙트러프러너와 계란을 제공하는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앙트러프러너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냉정한 게임의 법칙을 철저히 이해해야 하고, 대기업이나 투자자들은 행동과 책임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플랫폼유통칼럼]닭과 돼지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