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수프라는 2001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주인공 폴 워커가 탔던 스포츠카로 유명세를 치렀다. 영화 속 수프라는 4세대 모델로 2002년 단종됐다가 2019년 5세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공식 모델명은 'GR 수프라'다. 토요타 스포츠카 가운데 처음으로 모델명에 모터스포츠 팀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을 계승한 GR를 붙였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고 해보고 싶을 GR 수프라 2022년형 모델을 시승했다. 이 차는 다른 토요타 차량과 달리 특별한 배경 아래 탄생했다. 모터스포츠로 쌓은 기술과 역량을 통해 '가슴 뛰는 스릴(와쿠도키)'을 선사하고자 개발한 정통 스포츠카다. 차량 개발 과정부터 BMW와 기술 제휴를 통해 공동 개발했다는 점도 독특하다. GR 수프라와 BMW Z4는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지는 각별한 관계다.
이란성 쌍둥이지만 GR 수프라 외관은 Z4와 완전히 다른 개성을 지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후륜구동(FR) 스포츠카 특유의 롱 노즈 타입 보닛이다. 토요타 2000GT 유산을 계승한 더블 버블 루프는 헤드룸 공간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외부 공기 흐름을 유도한다. 헤드램프를 전면 안쪽으로 배치해 휀더 볼륨감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6개의 프로젝터 LED 헤드램프와 하단을 감싸는 주간 주행등은 야간에도 GR 수프라의 존재감을 높인다. 전면 하단부를 가로지르는 대형 인테이크는 엔진 냉각 성능과 저중심 차체 디자인을 구현한다. 전면 스커트는 공기역학 성능을 강화하며 외관의 강렬한 인상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차체는 정통 스포츠카답게 앞뒤 50대 50에 가까운 최적의 전후 무게 배분을 실현했다. 19인치 단조 알로이 휠은 접지력이 우수한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와 조화를 이뤘다. 짧은 휠베이스는 코너링 시에 강점을 보인다. 볼륨감 넘치는 앞뒤 휀더와 후면으로 갈수록 깎아져 내려가는 루프는 역대 토요타 스포츠카 디자인을 계승했다. 스포일러를 일체형처럼 설계한 트렁크 리드 디자인은 고속 주행 시 다운포스를 유도한다. 직경 100㎜의 대구경 듀얼 머플러는 우렁찬 배기음을 들려준다.
차고가 낮아 운전석에 앉으려면 허리를 크게 굽혀 몸을 넣어야 한다.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한 2인승 실내 공간은 Z4와 유사한 구성이다. 계기판과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물론 패들 시프트, 스티어링 휠 스위치 등이 운전자 방향으로 집중됐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에어벤트를 중심으로 길게 설계해 개방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뛰어난 전방 시야를 확보했다.
373㎜의 작은 직경을 가진 스티어링 휠은 마치 레이싱 게임을 하듯 정밀한 조향 감각을 전달한다. 패들 시프트는 코너링 시 빠르고 쉽게 변속할 수 있다. 등받이 부분에 알칸타라를 사용한 스포츠 시트는 몸을 잘 지지하지만, 딱딱한 편이라 장거리 주행은 무리가 있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6기통 직분사 3.0ℓ 터보 엔진이 FR 스포츠카에 최적화 설계됐다. 전체적인 주행 감각은 노면을 그대로 전달하는 직설적인 성향이다. 51㎏·m에 달하는 강력한 토크는 출발 즉시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최고출력은 387마력에 달한다. 선택한 주행 모드에 따라 적절한 소리를 내는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ASC)은 운전 재미를 높인다. 효율이 높은 8단 자동변속기는 정밀한 기어비로 출력과 정숙성을 실현했다. 강력한 출발 가속을 위한 론치 컨트롤 기능도 제공한다. 클러치 페달 간격과 브레이크 마찰부 가동 간격을 좁혀 직결감을 높였다.
전고가 낮은 스포츠카라는 점을 고려하면 승차감은 준수한 편이다. 서스펜션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를 채택했다. 가변제어 서스펜션(AVS) 방식으로 쇼크업소버 충격 감쇠력을 운전 조작과 노면 상태에 따라 최적으로 제어한다. 험로 주행 시 감쇠력을 낮추고, 노면 충격으로 차체가 아래위로 출렁이면 감쇠력을 높인다. 코너링 시에도 감쇠력을 조절해 차체 밸런스를 유지한다.
경량 차체 구조와 효율적 하중 배분은 빠르고 안정적인 선회 주행 성능에 일조한다.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과 같은 최신 기술로 접지력을 높인다.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방식 브레이크는 전륜에 4피스톤 캘리퍼를 넣어 언제든 원하는 만큼 제동력을 전달한다. 주행 모드는 노멀부터 스포츠, 스포츠 인디비쥬얼 모드를 제공한다. 스포츠 모드를 설정하면 엔진 가속 반응이 날카로워지고 배기음이 강렬해진다. 묵직해진 스티어링 휠은 차량과의 일체감을 높이며 변속기 반응도 빨라진다. 스포츠 모드에선 주행 장치 개입을 최소화해 급가속 시 차체가 좌우로 다소 흔들리기도 한다.
복합 연비는 10.2㎞/ℓ 수준으로 서울 도심 위주의 일상 주행 시 8~9㎞/ℓ를 기록했다. 가격은 7640만원이다. 2인승 구조로 실내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을 감수한다면 정통 스포츠카로서 GR 수프라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