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세컨더리 투자'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와 회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유동성이 필요한 기존 투자자와 검증된 투자처를 원하는 새로운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은 “회수 시장 위축과 신규 투자 축소로 말미암아 투자자 유동성 수요가 기록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새해에 세컨더리 시장이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세컨더리 펀드는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엔젤 등이 보유한 벤처 주식을 매입하는 펀드를 뜻한다. 유동성이 필요한 기존 투자자는 세컨더리 펀드에 지분을 판매해서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세컨더리 펀드는 검증된 기업 지분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다.
피치북은 세컨더리 시장 호황 전망의 근거로 '분모효과'(denominator effect)를 꼽았다.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주요 출자자는 주식·채권 등 전통자산과 사모펀드 출자 등 대체자산에 일정 비율씩 투자하는데 올해 주식 및 채권이 하락하며 대체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효과를 의미한다. 즉 투자자가 사모펀드에 새로 출자하지 않아도 투자 비중이 늘어나 한도를 채우고, 이로 말미암아 추가 출자가 어려워지는 현상이다.
회수 시장 위축도 세컨더리 활성화 전망의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올해 세계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IPO를 통해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투자하던 선순환 고리도 끊겼다.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투자자는 결국 세컨더리 등 대체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의 세계 세컨더리 시장 규모는 570억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 연간으로도 지난해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는 새해에 한층 강화돼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 자산운용사 해밀턴레인의 세컨더리 책임자는 “세컨더리는 대체 유동성 공급원으로서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면서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국내 역시 비슷한 흐름이 예상된다. 국내도 급격한 투자 위축으로 벤처 기업들이 중기-후기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투자자들로서는 예상보다 지분 보유 기간이 길어지면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분 처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중소벤처기업부도 최근 모태펀드가 '일반 사모펀드'에도 출자할 수 있도록 '모태펀드 관리규정'을 개정했다. 세컨더리 펀드가 주로 일반 사모펀드여서 모태펀드 출자 대상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투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의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세컨더리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기업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존 투자자가 지분 매각을 망설였으나 이제는 시장에서 할인율이 인정되면서 내년엔 세컨더리 시장이 한층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