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세대교체와 외부수혈에 초점을 맞춘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자금시장 경색에 맞서 인적쇄신을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다.
롯데그룹은 15일 롯데지주를 포함한 35개 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2023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올해 임원인사는 예년보다 보름가량 늦어졌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롯데건설 유동성 악화로 그룹 인사 전반을 재검토한 결과다. 회사 측은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내년 '영구적 위기'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존 사업의 변화와 쇄신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정밀한 검증과 검토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는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젊은 리더십의 전면 배치와, 책임경영에 입각한 핵심역량의 전략적 재배치, 외부 전문가 영입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 회장이 강조한 지속적 혁신과 미래 경쟁력 창출을 통해 턴어라운드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
최고경영자(CEO)의 전체 연령이 젊어졌다.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과 롯데헬스케어를 이끄는 이훈기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50대 사장 반열에 올랐다. CEO 전체 평균 연령은 한 살 낮아진 57세며, 신임 임원 중 40대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35년 이상 롯데에 몸 담았던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과 김현수 롯데렌탈 대표,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는 용퇴한다.
순혈주의 타파를 위한 외부 인재 영입도 이어갔다. 그룹 모태인 롯데제과 대표에 첫 외부 인사로 이창엽 전 LG생활건강 사업본부장을 부사장 내정했다. 이창엽 부사장은 한국P&G와 한국코카콜라, LG생활건강 미국 자회사를 거친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다. 롯데멤버스 첫 외부 여성 대표로는 신한은행 빅데이터 전문가인 김혜주 전무를 내정했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내부 검증된 각 분야 전문가를 전진 배치해 젊고 민첩한 실무형 조직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에 따라 롯데면세점 대표로는 김주남 국내사업본부장이, 롯데홈쇼핑 대표에는 김재겸 TV사업본부장을 각각 내정했다. 역량이 검증된 기존 CEO도 재배치한다.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는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지주 경영개선실장에는 고수찬 커뮤니케이션실장이 보임됐고 그 자리를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가 채우며 연쇄 이동이 이뤄졌다.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는 롯데그룹 호텔군 총괄대표 겸 호텔롯데 대표로 내정됐다. 이 대표는 벨리곰 등 마케팅 역량을 인정받아 롯데호텔이 글로벌 호텔 체인으로 도약하는데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컨설턴트 출신 안세진 호텔군 총괄대표는 그룹 싱크탱크인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으로 이동해 그룹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새로운 전략 방향 수립에 집중할 계획이다. 남창희 롯데슈퍼 대표는 롯데하이마트 대표로 내정됐다. 직매입 유통 경험을 앞세워 실적 부진에 놓인 하이마트 수익성 개선을 이끈다.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는 슈퍼사업부까지 총괄하며 그로서리 통합 역할을 수행한다.
3세 경영에도 본격 시동을 건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는 이번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 국내 등기임원이 됐다.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입사 후 롯데 경영에 적극 관여를 시작한 것처럼, 신 상무도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에서 경영을 배우며 본격적인 승계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