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A대 대학원 화학공학과 B교수 연구실은 대학원생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이다. 해당 학교 학부생만으로는 도저히 연구실을 꾸릴 수 없어 외국인을 대폭 받아들인 결과다. 이런 일은 B교수 연구실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같은 과 C교수는 5명 대학원생 모두를 외국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인문계에 이어 이공계 대학원 마저 점점 지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공계 대학원 위기'를 거론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STEPI 인사이트 '인구절벽시대, 이공계 대학원생 현황과 지원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이공계 대학원생 절대 규모는 증가했다. 그러나 초저출산 시대 출생아의 대학원 진학이 본격화되는 2025년 전후에는 입학자원 감소추세가 시작될 전망이다.
STEPI 연구진은 이때를 기점으로 이공계 대학원 규모는 본격 하락해 석박사 규모는 2050년 전후 현재 절반 수준이 되고, 졸업자 수 역시 2030년 전후 2만명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외국인 대학원생이 연구실을 채우는 것이 그 현상 중 하나라고 봤다.
우수 외국인 학생 유치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STEPI 보고서는 학생 선호도가 높지 않은 일부 대학에서 대학원생 확보를 위해 외국인 학생을 적극 선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실 발전이 아닌 존속을 위한 방편으로 외국인을 받는 병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엄미정 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질을 넘어 그 수에 대한 고민은 여태껏 직면하지 못한 것인데, 그것이 이제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심지어 수도권 사립대에서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대학에서는 재직자나 외국인을 빼면 대학원생이 거의 없는 연구실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인 외국인 대학원생이 꼭 우리나라 산업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D대학의 E교수는 “30년 동안 15명 외국인 대학원생을 가르쳤는데 단 1명만 영주권을 취득해 국내 기업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라며 “다른 학생들은 본국이나 제3국으로 취업해 떠났다”고 전했다. 외국인 대학원생이 졸업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산업계에 기여할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인기, 정책적 관심이 떨어지는 학문 분야에 더욱 심할 것으로 보인다. 전산, 전기·전자 등 인공지능(AI)이나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학과는 인재가 몰리는 반면에 다른 학문 분야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엄미정 위원은 이런 상황이 훗날 비인기 학문 분야 전문 인재 확보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과거에 별도 학과로 존재했던 '조선학과'가 없어지고 기계나 금속공학 학과 내 조선 전공 교수가 존재하는 형태가 되면서 조선 관련 전문 인재 양성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이공계 분야에서 톱 수준인 F대학 건설 분야 학과 G교수는 “우리조차도 예전과 비교해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남들이 좋다고 하면 다 좇아가는 우리 성향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 위원은 “지금은 과학기술 분야 대학원생이 부족해지는 첫 번째 시대로, 그 시작은 전체가 아닌 비인기 과목에서 이뤄질 수 있다”며 “학문 간 인력 빈익빈 부익부가 이뤄지고 비인기 학과들이 통합된다면 그만큼 해당 분야 전문 인력 확보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굉장히 효율적인 매칭 구조를 구현해 이공계 내부 인력 확보 전쟁을 막는 한편, 비인기 학문을 부각해 분야별 인력 쏠림을 완화하는 것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김동성기자 estar@etnews.com
일부 대학, 인원 채우기용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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