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주요 유럽 국가들이 역내 기업에 협력사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까지 철저히 살펴보도록 하는 '공급망 실사 의무화'를 본격 강화한다. 토탈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실사 의무 위반 혐의로 국제분쟁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나라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국내법 차원에서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한 법안(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 in Supply Chains)을 올해부터 본격 시행한다.
독일 정부는 올해 근로자 3000명 이상 기업, 내년부터는 1000명 이상 기업 대상으로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한다. 위반 기업에는 최대 800만유로 또는 연매출 2%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폭스바겐·다임러·BMW 등 자동차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의류업·식품제조업 등 독일에 기반을 둔 글로벌 기업은 탄소배출 감축 등 환경보호, 아동노동 금지 등 인권 보호에 관해 자사뿐만 아니라 협력사 상대로 공급망 실사를 의무로 해야 한다.
국내 법조계는 공급망 ESG 실사가 진행됨에 따라 환경·인권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우간다 인권·환경보호단체 6곳이 틸렝가(Tilenga) 원유·가스 취합시스템 프로젝트 등에서 기업실사의무법 위반 혐의로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을 2019년 10월 제소, 현재 관할법원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원주민 토지를 강압적으로 취득하고 적절한 금전적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고, 졸지에 토지·집·농지 소유권을 잃은 원주민들은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고 교육 기회도 박탈됐다는 비판이 있다”면서 “게다가 송유관이 나일강 하류 지역 등 수자원과 밀접하고 지진 발생 위험도 커서 환경 파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최근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글로벌 공급망 ESG 리스크가 가중돼 외부 요인에 취약한 한국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애플은 공급망 행동규범 위반 협력사와 거래관계를 단절할 수 있음을 명시했고, BMW도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108개 협력사에 입찰 기회를 제한했다. 또 제너럴일렉트릭(GE)도 서면진단을 통해 현장실사 대상을 발굴하고 고위험 협력사 71곳과 거래 관계를 끊었다.
오 변호사는 “올해는 대내외 위기와 변화를 직시하고 정부, 경영진, 근로자가 ESG 공감대를 맺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면서 “과감한 ESG 경영 전환으로 자칫 국제 분쟁화할 수 있는 경영 위기를 예방하고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십을 공고히 다지는 등 국제무대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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