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그룹이 국내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업계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원익은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제조 장비와 소재를 주로 하던,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거리가 있던 회사다.
원익그룹은 팹리스 회사인 디자인투이노베이션을 인수하고 사업화에 시동을 걸었다. 디자인투이노베이션은 2021년 12월 설립된 DDI 개발사다. 원익은 이 회사를 지난해 8월 107억원에 인수하고 계열사에 편입했다. 이후 사명을 '원익디투아이'로 바꾸고 인력을 본격 충원하고 있다. 초기 6명이던 인원이 최근에는 50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익이 반도체 칩을 직접 만드는, 즉 팹리스를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원익은 그동안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생산설비를 공급한 '장비' 회사 색깔이 강했기 때문이다. 원익홀딩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반도체 장비가 25%, 이차전지 장비 19%, 반도체·산업용 가스가 57%였다.
원익은 당초 매그나칩 DDI 사업을 인수할 계획이었으나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거래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직접 진출을 모색하던 중 디자인투이노베이션과 이해관계가 맞아 현 체계를 갖추게 됐다.
원익이 DDI 주목받는 건 국내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삼성디스플레이와 긴밀한 협력이 예상돼서다. 원익은 디투아이에서 DDI를 만들어 삼성디스플레이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미 몇몇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용 DDI를 삼성디스플레이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 1위다. DDI 업계 최대 고객사이자 시장인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그동안 삼성전자 시스템LSI, 매그나칩, 아나패스 등에서 모바일용 DDI를 공급 받았는데, 원익 등장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원익이 삼성과 두터운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매그나칩 등 기존 협력사들과 원익의 DDI 공급 경쟁 및 역할 변화가 주목된다. 양사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DDI는 디스플레이 픽셀을 제어하는 반도체다. 사진이나 영상이 디스플레이 화면에 뜨게 만드는 것이다. 디스플레이를 제어하는 반도체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회사와 DDI 회사 간 밀접한 협력이 필수고,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로도 꼽힌다. 실제로 정부는 2021년 OLED용 DDI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매그나칩이 해외 매각을 추진하면서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우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