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벤처·스타트업 투자시장이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7조원이 넘던 투자금이 하반기엔 4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도 벤처투자 혹한기가 이어져 '스타트업 줄도산'이 우려되면서 인수·합병(M&A) 활성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7일 스타트업 민간 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은 총 11조140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11조7286억원 대비 약 5%(5882억원)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상반기엔 5월을 제외하고 매달 1조원 이상 유치하며, 총 7조3199억원 투자금을 달성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측은 “상반기에 예정된 대규모 투자가 차질없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하반기 투자금은 3조8205억원으로 상반기 대비 무려 47% 가량 줄었다. 고금리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과 경기침체 우려 등이 스타트업 투자시장에 악영향을 미친 탓으로 분석된다.
벤처캐피털(VC)이 보수적 투자 기조로 전환하면서 스타트업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는 추세도 보였다. 지난해 투자 규모는 줄었지만 투자 건수는 1765건으로 오히려 1.5배 증가했다. 투자 건당 투자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적으로 스타트업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하향됐고 투자 규모가 작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가 몰린 영향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 속에 100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 건수는 23건으로 전년(19건) 대비 소폭 늘었다. 비바리퍼플리카(토스)는 5300억원으로 지난해 가장 많은 투자금을 확보했으며,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가 235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 VC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면서 “이전엔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금을 뿌리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유망 스타트업을 선별해 집중 투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스타트업계에는 올해가 더 큰 위기다. 민간투자 심리가 크게 경색된 데다 벤처투자 마중물 역할을 한 모태펀드 올해 예산이 40%가량 줄어서다. 실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창업자가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창업자 40.5%가 지난해 분위기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37%가 지난해보다 부정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긍정적 전망은 22.5%에 그쳤다.
올해 자금줄이 막히면서 문을 닫는 스타트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스타트업 간 M&A 활성화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스타트업 천국인 미국에서는 엑시트(투자회수) 수단으로 기업공개(IPO)보다 M&A를 더 선호한다. 한국도 M&A 추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M&A는 126건으로 전년 대비 2.2배 늘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부터 온라인 플랫폼 기업 M&A 심사를 일반심사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스타트업계는 M&A 활동이 저해될 것으로 우려한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자본시장이 악화하면서 사업을 접는 스타트업이 늘어날텐데, 이들이 쌓아온 역량이 그대로 사장되는 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M&A 활성화는 스타트업이 축적한 소중한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