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지난해에는 5% 이상의 고물가 상황이 지속돼 물가에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및 금융안정과 트레이드 오프(trade-off)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올해는 국가별로 통화정책이 차별화되는 가운데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 해가 될 것”라며 이 같이 말했다.
트레이드 오프는 두 개의 정책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경우를 뜻한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 목표가 상충될 가능성이 있어 정교한 통화정책을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나라와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 공통점과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공통점으로는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 △달러화의 강세 △높은 레버리지 수준 하에서의 통화긴축 등을 들었다.
우리나라만의 특수성 3가지도 언급했다. 높은 인플레이션 요인 차이다. 이 총재는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공급측 요인이 컸고, 미국은 팬데믹 회복 과정에서 늘어난 재정지출, 노동시장 구조 변화였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 수요, 공급 요인 기여도가 양 지역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또 다른 나라에 비해 원하 절하(달러 강세)가 빨랐던 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중이 105%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점을 차이로 꼽았다.
특히 부동산 관련해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가계부채 구조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의 단기부채 및 변동금리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데 만기가 1년 이하인 가계부채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며, 가계부채의 80% 정도가 변동금리 대출로 이뤄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통화 긴축 및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소비지출 및 경기의 민감도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금리 인상 효과의 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 간에 상충 관계가 커질 수 있으며, 이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또 물가가 목표 수준인 2%로 내려가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그는 “올해 물가 흐름을 예상해보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경기하방압력이 커지면서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뒤늦게 반영되면서 주요국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기준금리 인상 후 2~3년물 국채 금리가 떨어진 것에 대해선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시장에선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시그널로 봤는데 이 총재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본다”며 “단기 금리보다는 앞으로 장기 금리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고 기준금리가 올라도 2~3년 금리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