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문자를 입력하려면 키보드가 필요합니다. 키보드는 크게 물리 키보드와 가상 키보드로 나뉘는데요. 형태의 차이일 뿐, 사용 목적과 키 배열은 유사해요. 물론 가상 키보드 중에 천지인, 나랏글처럼 독특한 배열도 있어요. 다만 모바일 기기에만 쓰이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키보드 배열은 '쿼티(qwerty)'입니다.
쿼티는 키보드 왼쪽 상단 키 배열이 Q-W-E-R-T-Y 순으로 나열돼 붙여진 명칭이에요. QWERTY를 그대로 읊어 ‘쿼티’로 발음하죠. 엄밀히 따지면 영문 키보드 배열 중 하나입니다. 쿼티가 영문 배열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키보드 형태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쿼티 배열은 언제 누가 개발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키보드의 전신인 타자기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지금의 키보드 배열과 형태는 쿼티 방식 타자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모바일 기기 가상 키보드도 그렇습니다. 스마트폰 상용화 이후 휴대전화에서도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쿼티 배열은, 컴퓨터 키보드를 거의 그대로 옮겨온 형태입니다.
쿼티 배열, 누가 처음 만들었나?
기술은 언제나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타자기도 이런 흐름 속에 있었어요. 최초의 타자기는 1700년대 발명됐는데요. 쿼티 배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정치가이자 신문 발행인, 발명가인 미국인 크리스토퍼 래섬 숄즈(Christopher Latham Sholes)가 쿼티 배열의 시작을 알렸어요.
숄즈는 지난 1868년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타자기 특허를 확보했습니다. 당시 특허는 지금의 쿼티 배열과 거리가 멀었어요. 피아노와 비슷한 배열이었고, 28개 키가 전부였습니다. 쿼티와 유사한 배열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어요. 1873년, 숄즈는 타자기 상단 배열이 쿼티와 유사한 타자기 시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숄즈는 1878년, 현재 쿼티 배열과 거의 같은 배열을 지닌 타자기를 개발하고, 특허로 등록했습니다. 해당 특허 내용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어요. 키는 총 네 줄로 배치돼 있는데요. 맨 윗줄에는 숫자 2~9, 붙임표(-), 쉼표(,) 키가, 그 아래에는 알파벳 키가 위치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QWERTY, ASDFG, ZXCVB 배열이 현재 키보드와 똑같습니다.
왜 하필 쿼티였나?
숄즈가 쿼티 배열 타자기를 개발한 이유는 불분명해요. 그래서 개발 배경을 두고 다양한 가설이 나왔는데요. 가장 유력한 설은 기계적 결함을 줄이기 위해 쿼티 배열을 택했다는 겁니다. 타자기는 자판을 누르면 잉크를 머금은 먹지를 내리쳐 종이에 문자를 입력하는 방식이었어요. 자판이 먹지에 닿고 돌아가는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런 이유로 종종 빠르게 타이핑하다 보면 자판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이에 얽혀서, 타자기가 고장 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에 숄츠가 의도적으로 자주 쓰이는 문자를 멀리 배치한 쿼티 배열을 만들었다는 가설이 유력해요. 꽤 그럴싸한 가설입니다. 실제 쿼티 배열은 T, H, E처럼 함께 자주 쓰이는 문자가 서로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예외도 있어요. 영어권에서 E, R은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 알파벳인데요. 쿼티 배열에서 두 문자는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쿼티가 대세가 된 이유는?
결론부터 말하면, 쿼티 배열이 널리 보급된 건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입니다. 숄즈는 쿼티 배열 타자기를 판매하기 위해 총기 회사 레밍턴(Remington)과 손을 잡았어요. 당시 레밍턴은 남북전쟁 이후 총기 대신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기에 숄즈의 타자기를 판매하기로 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890년대까지 쿼티 배열 타자기 판매량은 10만대를 넘어섰어요.
쿼티 배열이 대세로 오른 중대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레밍턴을 비롯한 5개 타자기 제조업체의 합병이에요. 이들은 지난 1893년 합병을 마치고, 유니온 타이프라이터 컴퍼니(Union TypeWriter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쿼티 배열을 타자기 표준으로 채택했죠.
사람들은 익숙한 방식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레밍턴은 이를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사용자들에게 값싼 비용으로 쿼티 배열 타자기 사용법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어요. 자연스레 많은 이들이 쿼티 배열 타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쿼티 배열 사용자가 늘어나고, 업계 표준이 되자 다른 업체들은 쿼티 배열을 뒤따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오늘날까지 쿼티 배열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유입니다. 이후 발명된 키보드는 타자기 배열을 그대로 계승했어요.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쿼티 배열 가상 키보드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요.
쿼티 배열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사용자와 시장을 빠르게 확보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으니까요.
키보드 배열, 쿼티가 전부일까?
쿼티 배열이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이라는 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허나 많이 사용된다고 해서 제일 편하다고 보긴 어려워요. 애초에 쿼티 배열은 사용성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쿼티 키보드의 단점을 개선한 여러 키보드 배열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쿼티 배열의 아성에 미치지 못해 비주류로 전락했지만요.
쿼티 외 유명한 키보드 배열에는 드보락(Dvorak) 방식이 있어요. 워싱턴 대학 연구원이었던 어거스트 드보락(August Dvorak)이 1940년대 개발한 키보드 배열입니다. 드보락 배열은 쿼티 키보드의 문자 입력 방식을 개선했다고 해요. 드보락은 왼손 사용이 많은 쿼티 배열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사용자 대부분이 오른손잡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드보락 배열입니다. 그러나 드보락 배열은 쿼티 배열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드보락은 자판 배열이 쿼티와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는데요. 이미 쿼티 배열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드보락 방식을 외면했어요. 쿼티보다 뛰어나다는 구체적인 근거도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드보락의 효용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쿼티 배열은 앞으로도 쭉 널리 쓰일 듯해요. 2000년대 들어서도 새로운 키보드 배열이 여럿 등장했지만 쿼티를 앞지르지 못했어요. 쿼티와 드보락의 장점을 합친 콜맥(CaleMak) 배열,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서 쿼티 키보드보다 더 빠르게 타이핑할 수 있는 칼큐(KALQ) 배열이 대표적이에요. 두 방식 모두 잘 쓰이지 않습니다.
국문 키보드 배열을 평정한 것은 무엇?
여러분은 한글을 입력할 때 어떤 배열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아마 대부분 두벌식 배열을 쓰실 겁니다. 두벌식 키보드가 국내 표준이거든요. 두벌식 배열은 좌측에 자음, 우측에 모음을 배치해 직관적입니다. 사용하는 자판 수도 적어요. 영문 키보드와 자판과 정확히 일치하죠. 단 다른 배열에 비해 타이핑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어요.
두벌식, 세벌식, 네벌식 등 원래 한글 타자기 배열도 다양했는데요.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하나로 정리했어요. 처음에는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네벌식이 흔히 쓰였습니다. 정부는 198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자, 타자기나 키보드 배열 통일에 나섰는데요. 네벌식을 폐기하고 지금의 두벌식을 표준으로 공표했어요.
반드시 두벌식만 쓰라라는 법은 없죠. 일부 사용자들은 효율성이 좋다는 이유로 세벌식을 사용하곤 해요. 세벌식은 한글 제자 원리에 따라 초성, 중성, 종성을 따로 배치한 형태에요. 보다 빠른 타이핑이 가능하고, 정확성이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드보락이 쿼티 배열을 넘어서지 못했듯, 세벌식도 주류가 되지 못했습니다. 제품을 구하기도 어렵고요.
테크플러스 윤정환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