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계는 경제위기 속에 놓여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에너지 위기는 세계를 분열과 갈등의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로 인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기조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위기 및 결핍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인과 과학기술은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같은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해 과학기술인은 먼저 과거 산업혁명 시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 이전은 혼란 시대였다. 지금은 당연하다시피 여겨지는 먹거리와 간단한 옷가지조차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가난과 궁핍은 주어진 문제를 성찰하기 위한 시간조차 앗아갔다. 그 시대의 도전과 변화는 하루하루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치품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을 단번에 뒤집은 계기는 산업혁명이었다.
수공업에 기초한 작업장은 기계장치에 기반한 공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는 상품의 공급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경제성장과 함께 많은 사람이 절대적 빈곤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산업혁명이 단순히 개개인을 궁핍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변화와 혁신을 현대 사회에 안겨줬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산업혁명의 시작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에 있다고 지목한다. 하지만 제도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와트라는 천재적 인물과 증기기관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인물이 배출되고 증기기관이 발명될 수 있는 사회구조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의 제도적 밑바탕은 특허권을 비롯한 여러 지식재산권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시대 이전에는 설령 획기적인 과학기술 발명품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공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개인의 과학기술 업적과 발명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지 못했으며, 이로 말미암은 기술 탈취가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특허권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준 최초의 포문이었다. 특허권 덕분에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기술 업적과 발명품을 주저하지 않고 세상에 드러냈으며, 이는 지식 확산과 교류를 촉진하는 문화적 토대로 작용하면서 혁신의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한 혁신의 바람 속에서 나타난 것이 와트의 증기기관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산업혁명을 기술과 산업 영역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이는 혁신도 마찬가지다. 특허권 도입이 지식을 교류하는 문화와 증기기관 발명을 이끈 것처럼 혁신은 단순히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구성원 전반에 걸쳐 파급되는 문화적 개혁을 가져온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은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과학기술 바탕으로 한 혁신과 문화적 개혁으로 타개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한 국가 시스템 개조론과 같은 맥락이다. 사고의 전환(체인지 싱킹)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한국 과학기술계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과 국가 시스템 개조라는 큰 방향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정책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도 산업혁명 때 중시된 혁신의 가치를 바탕으로 사고를 과감히 전환해 기존의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출연연은 '역할과 의무(Role and Responsibility)'라는 미명 아래에 칸막이를 높게 만들어 가고 있다. 출연연 예산과 직결된 R&R은 예산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출연연마다 자신의 역할에 종속되도록 족쇄를 채웠다. 그 결과 출연연 간 지적 교류가 억제되고 말았다. 혁신을 위한 지식의 교류와 확산이 단절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과학기술인은 도전과 혁신 정신으로 무장하고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등 사고를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세계는 발전을 거듭했다. 그만큼 과학기술을 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제도적·정책적 조치도 이전보다 한층 복잡해지고 더욱 정교화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혁신의 본질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는 이제 더이상 주어진 틀에 안주하지 말고 족쇄에서 벗어나 각고의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포함한 연구기관 간 칸막이를 없애고, 지적 교류와 융합을 추진해야 한다.
과학기술인은 이러한 사고의 전환과 혁신을 통해 경제, 산업, 문화, 교육 등 국가의 전 부문에 걸쳐 끊임없는 혁신을 선도해야 한다. 개별 요소를 핀셋으로 조정하는 기존 행태에서 벗어나 전체를 뒤흔들어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는 과학기술 시스템 개조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출연연 외에도 대학과 산업이란 산·학·연 고리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이것이 오늘날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산업혁명도 결국 위기와 결핍에서 비롯된 것처럼 현재 당면한 세계적 경제위기도 과학기술 중심으로 대한민국 전반이 혁신하기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토대로 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과학계가 앞장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비단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경제, 산업, 문화,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혁신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사고 전환과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연구 시스템의 개조는 오늘날 한국의 위기 탈출과 국가 번영에 이르는 길임이 틀림없다.
정명애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단장ㆍ을지대 교수 machung@eulj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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