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요청이 8건에 불과해 회원국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WTO 상소기구 무력화로 인한 분쟁해결 기능 약화뿐만 아니라 다자무역체제가 위축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WTO에 따르면 지난해 회원국이 제기한 '협의요청(request for consultation)'은 8건이었다.
신규 협의요청은 지난 2020년부터 급속도로 줄어드는 형국이다. 2020년 5건, 2021년 9건에 이어 3년 연속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이는 WTO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22건의 협의 요청이 발생한 것과 대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협의 요청은 WTO 절차상 분쟁제기와 같은 의미다. WTO 분쟁해결기구(DSB)는 협의요청 건에 대해 60일간 당사국 간 양자화해성 조정을 하도록 하고, 화해에 이르지 못하면 당사국 합의를 통해 패널을 구성해 조정하도록 한다.
신규 협의요청이 줄어든 가장 큰 계기는 상소기구(AB) 무력화다. WTO에 제기된 무역분쟁을 최종 심리하는 상소기구는 2020년부터 상소위원을 구성하지 못해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회원국 입장에서는 분쟁을 제기하더라도 상소절차까지 이어지면 조정에 이를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면에는 WTO 다자무역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분석도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나 최근 남미 지역에서 협상에 착수한 '미주 경제번영 파트너십(APEP)' 등 지역 체제에 집중하면서 이것이 신호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는 “회원국들이 상소기구 무력화로 제소를 하더라도 결론을 낼 수 없어 상대국과 관계를 생각해 제소 자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분쟁해결 효능감을 상실한 WTO 체제에 대한 회의감과 상소위원 임명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보내는 경제안보 및 지역주의 신호 영향으로 WTO 중심 다자주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지난해 6월 제12차 각료회의(MC-12)에서 2024년까지 분쟁해결제도를 포함한 WTO 개혁을 논의하기로 한 데 따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회원국들과 패널이 수행하는 역할, 유사판례 기속 등 분쟁해결 기능의 많은 세부 쟁점을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호기자 lloydmind@etnews.com
협의요청 3년 연속 한자릿수
상소기구 무력화로 기능 약화
美 경제안보·지역주의 영향
다자무역주의 회의감도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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