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쿄선언'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 있던 이병철 삼성 회장은 언론에 전화를 걸어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을 알렸다. “누가 뭐라 해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사에 큰 획을 그은 이른바 '도쿄선언'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 (전자신문DB)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 (전자신문DB)

8일이면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이 나온 지 40년이 된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시작이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역사적인 날이지만 삼성을 포함한 국내 산업계가 직면한 현 상황을 고려하면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세계 1등 제품이자 수출 효자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판매 감소 때문이 아니다. 디지털이 사라지지 않는 한 메모리 반도체는 필수고, 사이클에 따라 수요는 다시 돌아온다. 걱정은 비메모리 반도체, 즉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다.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는 그동안 많은 투자로 진일보해 왔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삼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퀄컴으로 바뀌고, TSMC와의 파운드리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여기에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 돼 이전이나 협력 등 기술 습득 기회가 더 줄어들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 도쿄선언의 의미와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반도체 사업 결정 당시 삼성 내부에서는 실패하면 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삼성이 아니면 모험하기 어렵다”며 투자를 단행했다. 메모리반도체 1등인 삼성이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까지 모두 잘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내에서 삼성이 아니면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업가정신과 또 다른 반도체 신화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