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기업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 시설투자 금액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키로 한 것은 반도체 위기론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인식한 새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반도체 등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폭 올릴 방침이다. 대·중견기업은 기존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상향하기로 했다. 정부가 법안을 마련,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온 반도체는 현재 빨간불이 켜졌다. 글로벌 경기침체 심화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른 수출 부진과 더불어 경쟁국들의 적극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은 거센 추격으로 반도체 강국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안의 하나가 시설 투자 활성화다. 반도체 제조업은 대량의 설비와 시설 구축이 필수 산업이다. 대규모 선 투자, 후 장기 회수의 성격이 짙은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신규 팹 등 대규모 시설 구축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선제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가 미래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적 무기로 급부상한 요즈음 국제적으로 반도체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 7월 통과된 미국의 '반도체칩·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더불어 유럽,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의 각종 투자지원 정책 등을 살펴보면 대규모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의 총력지원 의지가 담겨져 있다. 경쟁국이 얼마나 자국 투자에 힘쓰는 지 엿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대기업 기준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최대 25%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 수단 가운데 세액공제제도의 유인 강도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대규모 시설투자 활성화와 더불어 그에 따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투자 유인에도 영향을 미쳐 경제 전체적으로 성장 활력이 넘치게 될 것을 기대한다.
이제는 타이밍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패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갈 때도 투자 타이밍이 승부를 갈랐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뺏긴 것 역시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할 때 우리나라가 주춤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같은 대규모 시설투자 산업은 주도권을 한번 내주면 재탈환이 거의 어렵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미국과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추락한 뒤 명맥 유지에 급급해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주요 경쟁국이 자국 내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고 해외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감면뿐만 아니라 시설투자비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주도권을 선점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도체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유망산업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산업 공급망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이라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소부장 강국으로 영역을 넓혀야 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경쟁국과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밀리면 메모리 반도체 강국 입지도 장담할 수 없는 엄중한 기술 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
대대적 세제 혜택 방안을 마련하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의지는 명백해졌다. 남은 숙제는 신속한 지원이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 지원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기대해 본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 사업단장 hyeongjoon.kim@nis2030.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