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한 지인은 스크린골프장을 혼자 간다고 한다. 보통은 여럿이 가서 팀 대항전을 펼치며 즐기는 곳이다. 혼자 가는 이유를 물어 보니 인공지능(AI) 배틀에 푹 빠졌다고 한다. 자신의 실력이 비슷한 상대 플레이어를 AI가 자동으로 매칭해 주고, 타수로 승부를 가리는 홀 스트로크 방식으로 골프를 즐긴다. 실력이 엇비슷한 누군가와 경기를 하다 보니 '쫄깃'한 승부를 펼칠 수 있다. 때로는 잔소리하는 동반자 없이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는 말도 했다.
온라인 게임업체 크래프톤은 함께 게임하는 AI 친구를 만들어서 이용자에게 서비스할 계획이다. AI로 전혀 새로운 게임플레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면 4명으로 이뤄지는 스쿼드를 혼자 하더라도 실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 같은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과의 게임이 아닌 AI와 함께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플레이를 즐기는 배틀그라운드 세상인 것이다. 크래프톤은 관련 기술을 올해 안에 개발하고 내년에 정식 도입할 계획이다.
AI 인격체를 사랑하던 영화 'her'(그녀)가 괴리감 없이 오버랩된다. 매일 공허한 삶을 살던 남자 주인공에게 AI '사만다'는 친구가 되어 줬고, 결국 사랑하고 이별까지 하게 된 내용이다. 개봉 10여년 만에 충분히 현실적으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우리는 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감정'의 유무를 따졌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스러운 대화와 감정까지도 공유하는 수준으로 AI가 발전했다. 특히 챗GPT의 등장은 AI와의 거리감을 좁혀 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계라고 보기엔 너무 인간스러운 답변을 한다. 느낌과 감정의 차이를 구별하는 단계까지도 진화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대학은 물론 기업에서 잇따라 '챗GPT'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 JP모건, 버라이즌 등 유명 기업들이 사내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부작용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AI 시대를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환경으로 넘어왔다. AI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산업군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AI튜터'가 등장했다. 예술계에도 AI가수, 화가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자'와 친구도 하고 경쟁도 해야 하는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
피하기만 해서는 미래 대비로 충분하지 않다. 이미 AI와의 배틀을 즐기고 있고,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로만 바라볼 존재가 아니다. 부족한 나의 능력을 뒷받침하고, 무한한 영감을 주거나 인류의 난제를 풀어 주는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준비 없이 맞은 AI 시대는 기대감보다 위기감만 더 고조시킬 것이다.
정부가 신성장 4.0 전략 보고서를 통해 AI산업 육성책을 내놓았다.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물론 건전하고 바람직하게 활용될 수 있는 세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법적·윤리적 문제도 심도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더 책임감 있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만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변화의 방향이 정해지면 반대로 가는 일은 없다. 챗GPT와 초거대 AI의 진화가 초래할 변화는 인터넷 혁명에 버금갈 것이다. AI와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