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리사회가 특허청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관리·감독기관 이관을 추진한다. 변리사의 특허소송 공동대리 허용이 골자인 변리사법 일부개정법률안 처리와 관련, 이인실 특허청장이 유보적 태도를 보인 것에 반발하는 집단 행동이다. 20년 가까이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은 데다 관리기관 수장의 애매한 태도에 그동안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대한변리사회는 지난 24일 정기총회에서 '대한변리사회 관리·감독기관 이관 촉구의 건' '특허청장 퇴진 촉구의 건'을 긴급안건으로 상정, 가결했다.
이 청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변리사회의 관리·감독기관을 특허청에서 산업부로 이관하는데 필요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게 골자다. 현 변리사법은 특허청을 변리사자격의 관리·감독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변리사업계 숙원인 '변리사 특허소송 공동대리 허용' 법률개정안이 상정·논의됐다. 법안은 지난 2006년 17대 국회부터 매회기마다 상정됐지만 도입이 무산됐다. 변리사 진영은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한 일본, 중국, 유럽 등을 예로 들며 특허소송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변호사 진영은 변호사의 단독대리를 규정한 민사소송법과 상충한다며 맞섰다.
개정안이 14년 만에 법사위에 오른 이날 그동안 개정안 처리 필요성을 대외에 알려 온 이 청장이 입장을 바꿨다. 이 청장은 “산업계와 과학기술계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본다”며 추가 의견수렴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논의에서 이 청장이 단 한 번도 찬성 의견을 밝히지 않자 일부 의원은 주무관청 기관장이 의사를 바꾸고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법안처리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개정안은 결국 법안심사 2소위로 회부됐다. 타 상임위 법안을 다루는 2소위는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잦아 '법안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변리사 커뮤니티에는 “이 청장이 결정적 순간에 말을 바꾸면서 개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에 계류되지 못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한 변리사는 “변호사측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취임 당시 개정안 처리를 공언한 특허청장이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에 말을 바꾼 데 대한 실망과 당혹감이 크다”고 말했다.
변리사회의 관리·감독기관 변경, 특허청장 퇴진 촉구는 이 청장의 발언에 대한 항의 성격이 짙다. 정기총회에서 안건이 가결됐지만 당장 특허청이나 특허청장의 지위가 바뀌지 않는다.
변리사업계의 불만이 표면에 드러난 만큼 갈등이 확산할 전망이다. 변리사회는 당장 집회 등 대응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법률 개정 논의에도 공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변리사회의 이번 결정은 내부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관리·감독기관 이관은 변리사 업계 내부에서 오랜 기간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결집력이 강한 사안이다. 정기총회에서 특허청장 퇴진 촉구의 건은 찬성 79%, 관리감독기관 이관 촉구건은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현재 세무사·노무사·변호사 등 전문자격사단체 대다수가 '부'를 관리 관리·감독 기관으로 두고 있다. 변리사와 특허청장은 특허 등 산업재산권 심판·소송에서 피고와 원고로 만난다. 변리사회는 이러한 이유로 변리사가 특허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해 왔다.
홍장원 변리사회 회장은 “그간 관리·감독기관 이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상황에서 이 청장의 국회 발언으로 인해 이관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특허청은 “지난 20여년간 과기·산업계 요청에 부응해 지재권을 보호하고, 중소·벤처기업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특허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왔다”면서 “개정안에 대한 특허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